어른대접
어른대접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18.12.0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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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병원에 다녀온 남편이 씩 웃는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느냐고 물어보니까 진료비 때문이란다. 조금은 의아했다. 잠시 후에 알았지만 만 65세가 넘으니까 전과 달리 진료비를 훨씬 적게 받아서 그렇다고 한다. 확연한 차이에 자신도 처음에는 놀랐다나. 이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실태에 무슨 큰 대접이라도 받은 것처럼 또 다른 설명까지 늘어놓는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조금은 난감했다. 아직은 실감 나지 않는 나이의 대접이라고나 할까. 공공적인 의료혜택이라지만 무언가 한 발 밀려나는 느낌을 남편으로부터 받았다. 왠지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남편도 내색은 않지만 가슴 한쪽이 기우는 듯한 느낌을 풍기고 있다. 우리는 마주 보며 말없이 웃어야 했다.

세월이란 시계를 돌보지 않은 채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제는 거리에 나서도 훤할 만큼 내 나이를 사람들이 가늠해 준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저만큼 과거에 머물러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생각으로 인해 곤란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디 몸과 마음뿐이겠는가. 내면이 덜 자란 어른의 모습이라고 후회를 곧잘 하면서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너그럽지 못한 나 자신을 너무 잘 알기에.

나이에 따른 갖가지 사회적 혜택은 물론 반길 일이다. 하지만, 쑥스럽다. 생각해보니 아직 준비되지 않은 마음의 상태 때문인 것 같다. 어른으로서 그동안 이 사회에 한 부분 작은 기여라도 해 왔는지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그저 바쁘게 살아온 기억밖에 없다. 어디 한 번 느긋하게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마음 나누지도 못했던 날들이었다. 이제 각기 다른 어른의 모습에서 앞으로 내가 추구해야 하는 나머지 인생은 어떤 방향일까 생각한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 했다. 많은 것이 변한 지금이다. 그래도 아직 가슴속에 살아있는 경로효친의 사상은 오늘도 사회 구석구석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돌아볼수록 아름다운 관계의 연속이기도 하다. 제도에 따라 어느새 우리도 어른이라는 호칭을 받고 있지만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이 많지 싶다. 지금을 백세시대라 일컫는다 해도 우선 나부터 그에 걸 맞는 준비와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이제는 나이와 더불어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흠칫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 속에서 작으나마 진정한 어른으로서의 본보기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이다. 외형에 묻어나는 어른의 모습이 아니라 내면이 견고한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진정한 어른의 자세란 그런 것이리라. 처음과 나중이 존재하듯 어른이 없는 세상도 원만하지 않을 테니까.

우선 가정에서부터 내 자리의 위치를 바라보아야겠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하루를 지날 때마다 겸허히 확인하고 다스릴 수 있는 자세가 절실하다. 그냥 덤덤히 주어지는 어른의 길은 싫다. 시대에 휩쓸린 어른의 대접이 아니라 지금껏 내가 누려온 갖가지 사랑의 대가를 갚으면서 살아가려 노력할 것이다. 비우고 낮아질수록 오히려 홀가분해지리라 믿는다. 그것이 스스로에게 주어지는 어른의 대접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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