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들다
갈마들다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8.11.29 2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스산한 초겨울 풍경으로는 그만이다. 가을부터 품어 안은 햇살이 만삭이다.

잎 진 가지마다 붉은 해가 따스하다. 직박구리 새가 작은 해에게 부리를 댄다.

속에 열이 많아선지 유별나게 감을 좋아한다. 침시와 홍시, 단감까지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작은 터만 있으면 서너 그루의 감나무를 심었다. 추석 지나 노란빛을 띠면 땡감을 따서 침시를 만들고 서리 맞은 것은 연시로 만들어 겨울 간식으로 먹었다. 올해는 생각이 바뀌어 자연홍시가 되면 하나 둘 나무에서 따먹으려 그냥 두었는데 입보다 눈이 호사를 누린다.

창문 너머 보는 것도 좋고 가까이 다가서도 완벽한 외면은 흠잡을 데가 없다. 홍시 하나를 따려다 그만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데 다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세 그루의 감나무 중 열매가 가장 많이 달려 흐뭇하더니 다른 나무의 감보다 맛이 덜하다. 그나마 서리 내리고 추워지자 좀 나아져 심심하면 감나무 아래로 간다.

직박구리 새가 홍시를 쪼아 먹다 기척에 놀라 마당 끝 작고 깊은 계곡을 건너 굴참나무 빈 가지 위에 앉는다. 감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여러 개를 쪼아 놓은 게 미안한지 긴장한 몸짓이다. 선명한 붉음에 맛있어 보이는 외면과 달리 맛없는 홍시를 두고 사람과 새가 갈마든다. 나에게는 심심풀이 간식이 직박구리 새에게는 절박한 겨울양식이 되었다.

살면서 외면만 보고 다른 사람을 오해할 때가 있었다. 대개는 잘못된 선입견, 편견, 이해의 부족에서 생겼다.

오해받을 일도 하며 살았다. 세상살이가 괴롭다는 아우성이 커질수록 내 겉모습은 마치 맛없는 감처럼 날로 화려해졌다. 그럴수록 연약하고 부러진데 많은 내면은 초라해졌다. 옷과 화장으로 외면은 꾸밀 수 있지만 마음은 화장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누구나 예복이란 옷을 벗고 알몸이 되었을 때 모든 제약으로부터 해방된다.

질투하는 마음, 남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마음, 남을 밀어내려는 마음은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마음 탓이다.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볼 때는 마음도 순해져 행복감을 느끼지만 어느 순간 생이 흔들리면 불행의 늪에 빠져버린다. 삶이란 언제나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오는가 보다. 홍시를 두고 새와 사람이 번갈아 드나들 듯이 말이다.

감나무 아래서 발걸음을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새가 날아온다. 나뭇가지가 곁을 내준다. 홍시 하나가 터진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생각을 바꾼다.

새가 쪼아놓는 숫자가 늘면서 감을 따서 저장해야겠다는 마음을 버린다. 직박구리 새에게는 일용할 양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감나무에서 나는 아무 때고 홍시를 심심풀이 간식으로 따 먹을 수 있다.

새들과 내가 수시로 드나들며 이어질 수 있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