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아경(忘我境)
망아경(忘我境)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8.11.2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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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강대헌 에세이스트
강대헌 에세이스트

 

“춤을 출 수 있어 행복했고, 춤을 추기에 힘들었던 삶의 순간들을 되뇌어 보며, 나의 인연, 나의 삶은 결국 춤과의 동행을 멈출 수 없음을 이제서 안다”고 말하는 박서연의 우리 춤을 길게 따라가며 호흡했어요.

`살풀이춤', `산조', `태평무', 그리고 `황진이'까지 박서연의 춤들은 극진한 춤으로의 동행이었습니다.

그의 표정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지만 결기의 빛깔도 가졌고, 그의 손은 허허로운 공기의 흐름을 잡았다 놓기를 반복했고, 그의 발은 물고기처럼 부드럽게 헤엄을 치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뜰에서 노니는 노고지리처럼 종종거렸지요.

무대장치의 벽면에 `혼무(魂舞)'라는 글씨를 유려하게 쓴 도암 박수훈의 캘리그라피 퍼포먼스와 큰 산과 넓은 바다를 품은 듯한 정용진의 `선비춤'은 박서연의 춤들에 대한 뜨거운 헌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문화의 `위대한 유산'으로 연결되고픈 박서연의 춤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이 더 깊게 어우러지고 노래 불러지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첫째 날을 보냈지요.

`SY박서연무용단'이 기획하고 내놓은 `2018 위대한 유산 춤으로의 동행' 둘째 날은 `인연의 끈 - 춤과 함께 동행'이란 부제를 달고, “마음에 감사함을 지녔기에 춤이 행복과 운명이 된” 여러 춤꾼의 오체투지 같은 열정으로 무대가 꽉 찼습니다.

세 개의 글자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시간은 꿈결처럼 흘러갔어요.

1. 정(靜)

기본적인 리듬과 정서였어요. 고요함이 태산과 같으니, 많은 빛이 숨어들었어요. 쫓아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고귀한 힘이었어요.

2. 중(中)

과녁의 중심만 바라보는 순간이었어요. 때론 땅을 치기도 하고, 한숨을 짓기도 하고, 먼 산을 쳐다보기도 했지만, 갸륵한 뜻은 숭고했어요.

3. 동(動)

신명이었어요. 엇갈린 박자조차도 천둥이 되는 흥겨운 정취였고, 북 가죽을 울려대는 박진감을 공중의 줄 삼아 타고 노는 자유였어요.

우리 춤의 모든 것이 결국 `자신의 마음과의 동행'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손에 들고서 가만히 응시하는 천도 마음이었고, 정갈한 옷고름도 마음이었고, 놀란 버선코도 마음이었고, 꽃이 핀 부채도 마음이었고, 맨손의 유희도 마음이었고, 품에서 떼어내지 못하는 북과 장고도 마음이었고, 달덩이 같은 소고도 마음이었어요.

저처럼 구경만 하는 마음조차도 붉게 타올라 온몸이 달아오르고 말았습니다.

장옥주의 `이매방류 기원무', 김은아의 `한영숙류 살풀이', 이미희의 `허튼춤', 엄정아와 이은경과 김구민의 `산조', 김미현의 `통영기방입춤', 박소원의 `박병천류 진도북춤', 민성희의 `한영숙류 태평무', 문경선의 `한혜경류 십이채 장고춤', 김평호의 `김평호류 남도 소고춤'덕분이었습니다.

나를 잊으니 또 다른 내가 살아나는 망아경(忘我境), 이틀 동안 우리 춤의 그러한 세상에 다가서게 해 준 모든 분들이 고맙습니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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