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지문을 찍다
중국에서 지문을 찍다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11.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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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2018년 가을,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가 되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번뜩 들었다. 단체비자라서 어떻게 할 수도 없었고 저녁부터 바로 학회일정이라 뾰족한 방법이 없으면서도, 정말 혼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왜 그랬는가? 최근 베이징 수도공항의 관문에서 공분을 일으킬 일이 벌어졌다. 바로 열 손가락 지문찍기다. 통관수속 직전에 지문을 등록하라는 고지가 붙어 있어, 순간 당황했다. 그래도 우리처럼 몇 개만 할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 하나 둘 끝나니 왼손 모두였고 왼손이 모두 끝나니 오른손까지 하란다. 이거 일본에서처럼 외국인 등록 지문날인 거부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갈아탈 때였다. 잘 되지도 않았고 특히 손을 오므려야 했다. 그림에 맞추려니 말이다. 내손이 큰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기계가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단체라서 통관을 위해 함께 줄을 서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장관이다. 누구는 멋모르고 그냥 들어왔다고 하고, 누구는 지문이 지워져 되지 않아 그냥 통과됐다고 하고, 어쨌든 대부분 지문등록 완료 쪽지를 들고는 흥분했다.

아니, 이래도 되는 거냐? 세상에 열 손가락을 다 찍으라고 하다니. 전 세계인의 생체정보를 중국이 수집하는 꼴이 되는 거다. 강대국의 횡포다. 미리 말했으면 나름 생각했을 거 아니냐. 뭐가 이렇게 엉성하냐? 쪽지가 있는 사람은 정식 통관에서 그냥 지나가고, 없는 사람은 거기서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닌 거냐?

그 가운데 가장 신경 쓰이는 말이`전 세계인의 생체정보'였다. 이제 나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내 지문 모두를 등록하였다! 나는 중국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꼼짝없이 잡히게 생겼구나. 꼼짝 마라, 홍길동!

나는 중국학회에서 내 글의 불량한(?) 부분이 가위로 잘려본 적이 있다. 주최 측에서는 `공연히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불쾌했고, 중국의 수준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건 30년 전의 일이었다. 현재는? 인터넷도 통제되고(특히 우리 카톡은), 가끔씩 홈피도 사라지고, 원인은 공식적으로 불명이다. 앞으로 우리는 중국의 변방 점령에 대한 의견도 낼 수 없고, 자유나 민주라는 말도 함부로 쓸 수 없게 되는 것 아닌지? 나처럼 중국은 `민족보다는 민주를 강조해야 한다'(중국어에서 민족과 민주는 발음이 비슷하다)고 떠드는 사람은 지문과 함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는 거 아닌가?

막상 통관 때는 쪽지를 받고도 다시 왼손을 모두 찍도록 했다. 그것은 앞에서 한 열 손가락 지문 등록은 마치 연습용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시범운행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조삼모사(朝三暮四)다. 그냥 다섯 손가락 찍게 하면 기분 나쁘지만 예행연습에서는 열 손가락 찍어본 다음 실제로는 다섯 손가락만 찍으니 어처구니없이 기쁜-아침에 바나나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니 화를 내고 그 반대로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주니 즐거워하는 원숭이 꼴이다.

우리도, 미국도 홍채인식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신분을 확인하는 수단이다. 범죄현장에 홍채가 남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문은 철저히 범죄용이다. 그래서 자국민은 하지 않는데도 조선인에게 지문을 날인하라고 해서 거부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나, 아무래도 죄를 많이 짓는 모양이다. 외국에서는 특히.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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