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과학 기술과 국제 교류의 기원 가야의 역사
최첨단 과학 기술과 국제 교류의 기원 가야의 역사
  •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 승인 2018.11.2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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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시기행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지난 7월 인도를 국빈 방문한 문대통령이 인도 대통령과 환담하는 가운데 주제가 되었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가야사'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람나트 코빈드 인도 대통령과의 만찬 인사에서 `삼국유사'에 기록된 한국과 인도의 오랜 인연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무려 2000년 전인 기원후 48년에 인도 갠지스강 유역의 야유타국에서 바닷길을 이용하여 한반도까지 건너와 금관가야 김수로왕과 결혼해 가야의 첫 왕비가 된 `허 황후'를 언급 한 것이다.

허 황후 이야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문 중 여러 차례 등장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공동언론발표에서 “수천 년 전에 슈리라트나(허 황후의 인도 이름) 공주가 김수로왕과 혼인하였다. 정말 놀라운 것은 지금 이 시점까지도 수십만 명의 한국인은 바로 이분들의 후손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전자 인도 현지 공장인 노이다 공장 준공식 축하 영상에도 허 황후를 매개로 인도와 한국이 과거부터 각별한 사이였다는 내용이 담겼고, 두 정상이 채택한 한-인도 비전성명의 첫 항목에서도 양국 간 깊은 역사적 유대를 상징하는 허 황후 기념공원 사업 추진 등이 적시되기도 하였다.

이런 배경에는 문 대통령의 남다른 `가야사(史)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고 일부 언론에서 기사화되었다. 학창시절 역사학자를 꿈꿨을 정도로 역사를 좋아하고, 특히 고향인 부산·경남 지역을 무대로 한 가야사에 관심이 많았던 문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에서 “국정 과제를 정리하면서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꼭 좀 포함시켜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기원후 42년에 건국한 가야는 낙동강 유역 일대를 배경으로 500여년간 정복국가인 고구려와 신라, 백제와 동일한 시기에 존재했던 우리나라 고대국가였다. 낙동강 하류지역인 김해 지역을 근거로 금관가야가, 그리고 낙동강 상류 지역인 경북 고령 지역에서 대가야 등 낙동강 유역에 여러 가야 국가들(`가야연맹체'라는 용어 사용)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542년에 금관가야, 562년에 대가야가 신라에 점령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후 우리 역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해 3국시대로 정리되면서 가야를 잊게 된다. 아울러 일제의 식민지사관에 의해 가야사가 왜곡되어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가야는 현대사회에 비유하면 핵무기에 버금가는 고대의 첨단 산업인 철로 유명한 나라였다. 가야 지역의 고분들에서 출토되는 철제 유물들은 동시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것들이다. 특히 고대 철갑옷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기마병을 보유하고, 말에도 철제 갑옷을 입혔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가야는 일찍이 바다를 통해 철제 무기와 철기 제품들을 교역 하며 국제화되었는데, 인도 출신 수로왕비 허 황후의 존재는 가야의 고대국가의 형성과정에서 국제화의 정도를 가늠하게 한다. 이렇듯 발전되고, 국제화된 가야가 어떤 이유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신비의 나라, 수수께끼의 나라'라고 부르는 가야사에 관해 좀 더 연구하고 밝혀내야할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소외된 역사가 있어서도 안 될 일이지만 정치적 의도로 순수한 학문적인 영역이 침해를 받아서도 안 될 것이다. 가야사가 영호남 화합 차원에서든지 아니면 점점 더 다국적 사회, 다문화 사회로 변해가는 한국사회에 의미 있는 당당한 역사로 우뚝 서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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