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이다
이제 시작이다
  •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팀장
  • 승인 2018.11.27 2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팀장

 

지나간 일이지만 공예비엔날레 기획운영위원으로 생각했던 사람 중 `쿠마켄고'가 있었다. 일본건축계에 안도다다오 이후 이렇다 할 만한 건축가가 없던 차에 등장한 인물이다. 빅토리아앨버트뮤지엄의 분관이자 스코틀랜드 디자인뮤지엄을 설계한 인물. 디자인뮤지엄은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광의 던디 해안가 절벽 위에 있다. 이 정도의 인물이 비엔날레와 어울린다는 생각이었다. 자연과 건축을 잇고, 약한 건축을 이야기하는 사람.

2016년 11월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토야마유리학교 관장을 만나 공예비엔날레와의 연계사업을 논의하고 토야마유리미술관장을 만나 협력사업을 이야기하기 위해 토야마유리미술관에 갔다. 일본 코베시 미카게지방의 화강암인 미카게이시, 유리, 알루미늄의 서로 다른 소재를 조화롭게 활용해 만든 외관은, 맑은 날이 많지 않은 지역에 시간과 날씨의 흐름을 반영하며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 티타늄 외관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어쩌면 실내의 빛이 새어나오는 밤의 빛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겠단 생각이었다. 실내로 들어서며 옛 대화백화점이었던 공간의 역사를 보여주는 장식물이 붙어 있었다. 시립도서관이 들어 있는 미술관의 초입은 커다란 나무의 사이를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유리의 차가운 느낌을 나무로 보완해 주는 사인물들이 곳곳에 설치되었다.

미팅장소를 들어서며 중정의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을 감지한다. 토야마현산에서 생산된 나무로 숲의 형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2층에서 시작되어 6층까지 이어지는 동선 상에 중앙의 디자인은 숲이었다. 숲은 미야자키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숲과도 같았다.

아래층에서 보는 숲은 장엄했다. 노다관장의 안내로 시설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이 건물에 숨겨진 범상치 않은 일들을 들었다. 노다관장은 청주에서 벌어지는 비엔날레를 언급하면서 자신들이 가진 자산에 대해 설명을 이었다. 현대유리의 컬렉션, 비치는 수장고, 그리고 겸손하게 치훌리작품으로 안내를 했다. 토야마산을 형상화, 자연의 영묘함을 유리와 나무로 표현한 데일치훌리. 세계적 명성의 치훌리는 젊어서부터 초청해 워크숍 결과물로 일본의 유리공예를 만들어낸 그들의 전략을 이야기한다. 지금도 그 인연으로 매번 워크숍에 참가한단다.

치훌리 작품은 유리미술관과 하나 되는 전시연출이었다. 어떠한 지진의 영향도 받지 않게끔 설계한 전시공간도 언급해 주었다. 영국의 빅토리아앨버트뮤지엄의 작품과 또 다른 경험이다. 그리고 가장 위층은 서로 다른 층이 하나로 연결되는 거대한 탑이었다. 중정을 중심으로 나선형의 동선에 설치된 루버(하이타)사이로 각각의 층들의 기능을 볼 수 있는 오브제들이 보였다. 철저하게 계산된 지혜가 거부감 없이 하나로 조화되는 대목이었다. 호쿠리쿠의 자연을 상징하는 외관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자재, 천장과 각층의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빛, 그것은 하나의 숲을 만들고 있었다. 이 공간을 설계한 사람이 `쿠마켄고'다. 언젠가는 이 사람을 공예비엔날레로 불러들인다는 생각이 당시 나의 욕심이었다.

폭설이 잦고, 우중충한 날이 많은 토야마에 건축을, 치훌리의 작품을, 전 세계유리컬렉션을 보러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다시 가고 싶다. 그들과 약속했던 일들을 풀어가고 싶은 것이고 그들의 경험과 연을 청주로 끌어들이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35년 전부터 준비하고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보여줄 것이 생겼다고 했다.

청주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생각해내는 것은 늘 제자리에서 맴도는 생각들이다. 좀 더 커다란 그림, 긴 호흡의 목표가 있어야 할 듯하다. 다시 시작하는 지금, 한 해 한 해 자라 연륜이 생겨 거목이 됨을 상기한다. 거목을 키우는 일을 하려 함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