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개혁 언제까지 미룰 건가
수능 개혁 언제까지 미룰 건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11.25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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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질 때마다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이런 시험을 왜 보느냐는 것이다. 영국 옥스포드대 졸업생에게 우리나라 수능 영어시험지가 주어졌다. 그는 영어 종주국의 명예를 걸고 진땀을 흘렸지만 풀 수 없는 문제가 속출했다. 결국 도중에 시험지를 던져버리고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나 풀 수 있는 문제”라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고등학생들이 이런 시험을 왜 치르느냐”고 물었다. 국제학회에 참석한 외국의 수학자들이 우리 수학 수능문제를 보고 놀랐다고도 한다. 수학자들도 고전하는 고난도 문제를 고교 졸업생들이 풀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그들도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시험이 끝난 후 이런 논란이 벌어졌다. 유독 난해한 문제가 출제돼 `불수능'으로 지탄받은 국어영역이 도마에 올랐다. 수험생들의 집중 성토를 받은 31번 문제는 정답률이 19%에 불과했다. 맞춘 학생이 10명 중 2명도 안됐다는 얘기다. 연필을 굴려 `찍기'만 해도 확률상 정답률은 이보다 더 나온다. 나도 못 풀겠다는 국어교사들의 고백이 이어졌을 정도다. 지난해 국어영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디지털 통신 시스템을 주제로 한 지문을 읽고 푸는 문제가 있었는데 금융전문가들도 포기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더 기막힌 일화들도 있다. 황석영은 자신이 쓴 소설 `삼포가는 길'을 지문으로 출제한 수능 모의고사에서 고작 60점을 받았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묻는 문제까지도 틀렸다. 작가가 직접 밝힌 `작가의 의도'가 오답이 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지만 그저 씁쓸한 해프닝 정도로 넘어갔다. 시인 최승호는 자신의 시를 지문으로 한 모의고사 문제를 하나도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건 가르침이 아니라 `가래침'이라고.

각국 청소년들이 실력을 겨루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우리나라는 늘 상위권이다. 지난해 브라질서 열린 이 대회에 6명이 출전해 모두 금메달을 따내서 종합 1위에 올랐다. 우리 학생들은 답이 존재하는 문제를 푸는 데는 귀신의 경지에 올랐지만 거기가 끝이다. 한 치도 더 나가지 못한다. 아직 답이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문제 앞에서는 속수무책 일 뿐이다. `필즈상'은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1936년 제정돼 4년마다 수학 발전에 기여한 젊은 수학자들에게 전달한다. 지금까지 60명의 수상자가 나왔지만 우리는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베트남과 이란도 수상자를 냈다. 고등학교 때 국제무대를 제패한 수학 영재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세계에서 대학 강의실이 가장 조용한 나라가 한국이다. 교수의 목소리와 그 강의를 받아적는 펜 굴러가는 소리만 들린다. 교수의 주장과 논리를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이고 필기와 암기로 일관하는 강의실에서 창의와 개성이 창출될 리 없다. 이스라엘의 대학 강의실은 난장 그 자체다. 토론이 아니라 싸움이 벌어질 기세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놓고 충돌하는 격렬한 논쟁의 장에서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이 노벨상 수상자의 40%를 차지하는 이변이 탄생한 것이다.

4개의 보기 중 출제자가 원하는 답을 골라내는 재주를 배우는 데 12년을 매진해온 학생들은 대학에서도 교수의 말씀을 숨소리까지 받아적고 달달 외워서 A학점을 받는다. 학력 경쟁에서 국제적 성가를 올렸던 영재들은 이 과정에서 깨닫는다. 주어진 답 외에 새로운 답을 찾거나 묻는 것이 출세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영재 중의 영재들은 주로 판사가 되고, 그중에서도 슈퍼 영재들이 법원 행정처로 모인단다. 거기서 벌어진 일이 `닥치고 시키는대로만 하는 것'이었다. 대법원장의 지시만이 금과옥조였다. 그래서 `상고법원 관련 BH(청와대) 대응전략'을 만들고 그 전략의 하나로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대통령님 의중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적시하는 과정은 대학 강의실처럼 고요했고 일사불란했다. 어느 누구도 `판사 임명권을 대통령에게 진상하는 것은 3권분립을 뿌리째 흔드는 발상 아니냐'고 따지지 않았다. 시험 출제자나 교수의 의도 밖에서 다른 답을 찾거나 `왜'냐고 묻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창조적 마인드와 비판적 사고를 배양하지 못하는 수능의 개혁은 더 이상 미룰 과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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