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쓰레기통
과학자의 쓰레기통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11.2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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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 앞에서

 

쓰레기란 사용하다가 쓸모가 없어져 버리는 물건들이다. 쓰레기라고 하지만 모든 쓰레기가 처음부터 쓰레기였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쓸모 있는 것들이었다. 어떤 것은 너무 낡아서, 어떤 것은 용도가 없어져서, 어떤 것은 새것이 나와서 쓰레기가 된다. 좀 일찍 쓰레기가 되느냐 늦게 되느냐의 문제이긴 하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의 종착점은 결국 쓰레기장이 아닐까?

엔트로피의 원리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자연현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것이 쓰레기로 변한다는 말이다. 공사장에 가 보면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일을 많이 할수록 쓰레기도 많이 만들어낸다. 과학자들도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니 만들어낸 쓰레기도 많을 것이다.

과학자의 쓰레기통을 조사해 보면 어떤 것들이 나올까? 과학자들이 버린 쓰레기는 엄청나게 많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천동설일 것이다. 톨레미가 제안한 천동설은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기까지 천문학자들이 사용하던 매우 유용한 연장이었다. 처음에는 천동설을 쓰레기로 버리는 것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으나 지금은 쓰레기통 한가운데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쓰레기 중에도 재활용되는 것이 있는 것처럼 재활용되는 과학의 쓰레기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뉴턴이 제안한 빛의 입자설이다. 뉴턴은 빛이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당시의 호이겐스는 파동설을 주장했지만 뉴턴의 명성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뉴턴의 입자설은 토마스 영, 프레넬 등에 의해서 빛이 파동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쓰레기 신세가 되었다.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입자설은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로 갈아타고 당당하게 쓰레기통을 나와서 지금은 양자론의 주인공이 되었다.

과학자들의 쓰레기통에는 참 특이한 쓰레기도 있다. 그것은 바로 에테르다. 에테르란 우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가상적인 물질이다. 과학은 보이고 만져지는 물질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인데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이런 물질이 있다고 믿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학에서는 보이고 안 보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과학자들의 에테르에 대한 믿음은 종교적 신앙에 비견될 정도로 확고했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그래도 아직 에테르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하고 만지작거리는 과학자들이 상당수 있는 것 같다.

그 외에도 과학자의 쓰레기통에는 다양한 쓰레기들이 있을 것이다. 난로 같은 뜨거운 물체에서 내뿜는 열이 원자나 분자처럼 알갱이로 되어 있다는 열소설, 지구의 다양한 생명체가 진화가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창조설, 선인장의 가시는 동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등 만물은 어떤 의지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목적론, 진화론의 초기에 등장했던 용불용설 등이 과학자의 쓰레기통에 들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과학자의 쓰레기통에는 하느님도 있을까? 어떤 과학자의 쓰레기통에는 분명히 하느님이 있을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쓰레기통에는 하느님이 한 중앙에 앉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뉴턴의 쓰레기통에는 분명히 하느님이 없었다. 그는 모든 자연현상이 신의 섭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대론이나 양자론이 미래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상대론이나 양자론을 우습게 여기지는 말아라. 과학자의 쓰레기통에 들어 있는 것들은 박물관의 소장품들과 같이 모두 소중한 인류의 문화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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