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손(破損)과 죽음
파손(破損)과 죽음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8.11.2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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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방금 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가 보이지 않는다. 남편이 신호를 보내도 메아리가 없다. 소파 방석의 먼지를 터느라 창문을 열고 흔들었는데 그 때 떨어졌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어둠이 사방을 덮은 시각이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혹시 지나가는 사람이 주워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내 마음도 어둠 속이었다. 거실 어딘 가에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돌아설 즈음, 그가 신호음인 `숨어 우는 바람 소리'로 자신을 알렸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그를 집어 들었다. 케이스가 벗겨져 알몸인 그는 거미줄이 엉기듯 만신신창이로 내게 안겼다. 아마도 남편이 계속 신호를 보냈나 보다.

아파트 17층에서 떨어졌으니 그의 온몸이 성하기를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다. 떨어지는 순간 그가 얼마나 아팠을까보다는 그의 몸값을 먼저 생각하고 기능을 잃어 사용할 수 없게 될까 걱정이 앞섰다.

커버글라스의 상처 난 틈 사이로 며칠 동안 겨우 통화를 했다. 며칠 후 내부 충격으로 액정까지 손상 된 그가 부르르 몸을 떨더니 완전 불통이 되었다.

그가 기능을 상실하던 날, 산산조각이 나서 아픈 몸을 빌어 통화를 시도했던 자신이 너무도 잔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높은 곳에서 떨어진 그의 통증을 생각했다.

그가 건강할 때에는 고맙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나와 친교를 나누는 사람들과 소식을 주고받게 해주고, 글을 쓸 때엔 친절한 조력자였으며, 잠이 오지 않거나 마음이 허전할 때엔 함께 놀아주는 다정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무엇이든 물으면 알려주는 스승이기도 했다.

그의 추락은 내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쳐주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회생불능의 몸으로 내 문갑 서랍에 누워있다. 약정 기간이 많이 남아 휴대폰을 새로 사지 못해 시무룩한 나를 위해 아들은 휴대폰을 나에게 주고 자신은 전에 쓰던 휴대폰을 쓰고 있다.

아직 새로 만난 휴대폰과 정이 들지 못한 어느 날, 친구들의 집단 구타를 이기지 못하고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하여 숨진 중학생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떨어지는 순간 충격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소리 없이 누워있는 파손 된 휴대폰과 처참하게 죽은 중학생의 얼굴이 겹쳐졌다.

다문화가정에서 힘들고 외롭게 살던 그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힘들어했다는데 죽기 전까지도 폭력에 시달렸다니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자식은 어머니의 목숨처럼 소중한데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아들을 본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리고 살면서 가슴에 묻은 자식 때문에 얼마나 괴로울까? 나도 자식을 키운 어미로써 가슴이 아프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이 있다. `남의 나쁜 행동을 보고 자신을 바로 세우라'는 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직도 친구들을 괴롭히는 나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위령성월에 `파손破損과 죽음'의 단어가 내 곁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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