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 접대에 대가성은 없었다
룸살롱 접대에 대가성은 없었다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8.11.19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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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술을 먹었지만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 10년 전 쯤, 한 연예인이 자신의 주취 운전 상황을 설명하다 실언을 하여 `유명해진' 말이다.

지난 주에 이 말을 떠올리게 하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는 지난 15일 알선뇌물수수혐의로 기소된 김모 변호사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김 변호사는 청주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2013년 7월~11월 사이 사법연수원 동기의 소개로 만난 A씨로부터 재판 청탁의 대가로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상고심 재판부는 최종 판결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김씨)가 재판에 도움을 주겠다는 명목으로 술과 안주를 제공받았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원심(1심과 2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한마디로 `대가성이 없었다'는 판결이었다.

판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재판부에 여론의 화살이 쏟아졌다. 김씨는 청주에서 판사로 재직하던 중 A씨를 만나 유흥주점 등에서 아홉 차례에 총 636만원 어치의 술과 안주를 제공받았다. A씨는 당시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같은 법원에서 재판을 받던 피의자 신분이었다.

검찰은 김 변호사가 A씨로부터 청탁을 받은 것으로 보고 공소를 제기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이 추가 정황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됐다.

1. 피의자 신분이었던 A씨가 판사 신분이었던 김 변호사에게 `범죄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한 점.

2. 두 사람이 `형님', `동생'이라고 부르며 빈번하게 교류한 점.

3. 판사 신분이던 김씨가 법원 근처 식당에서 A씨를 만났고, 당시 공판 담당 검사와 합석해 만남을 가진 사실.

그러나 대법원은 물론 1, 2심 재판부는 이러한 정황을 모두 김 변호사가 무죄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거꾸로' 판단했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①. A씨가 김씨에게 자신의 혐의 명(名)만 말하고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말하지 않은 점.

②. (상호간 호형호제 할 정도여서) 김씨로서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A씨가 술을 사는 것'을 (청탁이 아닌) 친분 관계로 사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

③. (김씨가 A씨의 공판 담당 검사와 식당에서 함께 만난 것은) 뇌물(술 접대)을 수수한 공무원의 행동으로서 상당히 이례적임.

재판부는 이같은 이유를 들어 무죄를 선고했으며, 이에따라 김 변호사는 룸살롱 등에서 600만원 대의 향응을 제공받고도 형사 처벌은커녕, 징계시효도 지나 변호사 윤리강령에 따른 징계조차 받지않는 `행운의 사나이'가 됐다. 만약 김 변호사가 2016년 11월 `김영란법' 시행 이후 그와 같은 향응을 받았다면 당시 공무원 신분(판사)이었기 때문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제공받은 혐의가 적용돼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아야 했다.

각설하고, 헌법 제103조는 이렇게 말한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양승태 법원의 사법 농단이 심판대에 올려져 있는 가운데 나온 이번 판결. `판사가 피의자에게 600만원 어치의 룸살롱 접대를 받은 것을 특별할 것이 없는 것으로 보는 재판부가 놀랍다', `이쯤이면 대법관의 분별력은 정신 병자 수준'. 국민들의 사법부를 향한 불신이 극에 다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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