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완벽한 타인인가
우리는 완벽한 타인인가
  • 김권남 청주시 금천동 주민센터 주무관
  • 승인 2018.11.1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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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남 청주시 금천동 주민센터 주무관
김권남 청주시 금천동 주민센터 주무관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다고 틀렸다고 말하지만 그게 아니고 다른 거였어. 남자는 안드로이드폰, 여자는 아이폰이야.”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완벽한 타인(Intimate Strangers)’에 나오는 대사다. 조선시대 김만중 소설 ‘구운몽’의 시퀀스(sequence)를 따라가는 이 영화는 완벽해 보이는 듯한 인생의 반쪽을 순식간에 생판 모르는 완벽한 타인으로 바꾸는 과정을 온전히 자기중심성(Ego Centrism)에 기반한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서는 끊임없이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직장 상사나 동료, 친구나 이웃 간은 물론 직장 내 부서 간, 노사 간, 특정단체 등에서도 갈등은 자주 발생한다. 이렇듯 자기 자신만 소중하고 자기의 생각만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우리는 자기중심성이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자아중심성은 발달심리학자 피아제(Jean Piaget)에 의하면, 4세에서 7세 사이의 아동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사고의 특성이라고 한다. 어른이 돼서 나타나는 자아중심성은 자기와 대상, 혹은 자기와 타자와의 구분을 명확히 인지하면서 자기와 다른 것을 자기에게로 동일화하려는 성향에서 비롯한다. 최근 부쩍 심해진 우리 사회의 남녀 간의 성 대결과 진보와 보수의 대결, 그리고 베이비부머(Baby Boomer) 세대와 베이비 버스터(Baby Buster) 세대와의 간극 이 모두는 자아중심성의 핵심을 보여주는 국면이다.
‘내게 그런 핑계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중략)….’ 가수 김건모는 ‘핑계’(1993년)에서 이렇게 절규했지만 절규는 어디까지나 절규일 뿐이다. 사람들은 좀처럼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어떤 갈등 상황에서 무엇이 공평한지를 평가할 때는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속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자신의 입장이나 역할을 배제한 채 무엇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는지 상상해야 한다. 무지의 장막이 쳐진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 재산, 신분, 성(gender) 등의 사회적 조건을 알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떤 계층에 특별히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조화로운 사회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아중심성을 벗어나는 방법은 관용에서 시작된다. ‘톨레랑스(Tolerance)’정신은 자신과는 다른 타인과의 차이를 자연스레 인정하면서 그 차이에 대해서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루소(Jean Jacques Rousseau)는 “나는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나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그 어느 누구와도 다르다고 믿고 있다. 내가 남보다 나은 인간이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나는 남들과 다르다”라고 말했다.
복잡한 삶 속에서 타인과 의견이 일치할 확률이 낮을망정 이해 당사자들에게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게 결코 부질없는 일은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 지향성(Others-Directivity)’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조절은 가능하다. 우리는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을 서로 인정해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존중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 여러분은 완벽한 타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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