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잎 다 지기 전에
단풍잎 다 지기 전에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8.11.1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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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덧 입동이 지나고 소설이 눈앞이다.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든다는 말이다. 지난주엔 무서리가 내렸고 어저께 된서리가 왔다. 이맘때면 갈무리할 것들이 많다. 고운 빛깔을 한껏 뽐내는 고추를 따야 하고, 고구마를 캐고, 잘 마른 들깨도 털어야 한다. 별미로 된장찌개와 호박잎 쌈을 하려면 호박잎을 따야 한다. 마당 가에 심은 호박넝쿨엔 아직은 풋호박 이파리 몇 장이 시들었고 늦둥이로 올망졸망 수없이 달린 애호박이 오히려 애처로워 보인다.

무서리는 무(묽다)+서리다. 늦가을에 처음 내리는 약한 서리로 수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액체상의 서리다. 엷은 서리라고도 한다. 무서리가 온 뒤 곧 된서리가 온다. 된서리는 늦가을에 아주 되게 내리는 서리라는 말일 것이다. 한자로 쓴다면 비슷한 말로 숙상(肅霜), 엄상(嚴霜)이라고도 한다. 된서리라는 말이야말로 모진 재앙이나 타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아니겠는가. 부정을 일삼던 관리들에게 된서리가 내렸다는 기록들이 많이 나온다. 된서리의 어원은 되-+-ㄴ+서리가 아닐까.

괴산 양덕저수지 은행나무 축제에서 은행잎이 마치 우리 손녀 손바닥 같더니만, 애호박을 보노라니 이번엔 `잼 잼 잼'하며 고 조그만 주먹을 꼬옥 쥐었다 폈다 하는 아가의 앙증스런 주먹 같다. 이제 생후 10개월 된 손녀가 있다. 늦다면 늦은 나이에 손주를 보았다. 아들은 나보다 7년이나 늦게 결혼을 하였으니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에 딸을 낳아 내게 안겨준 것이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손주인가. 일찍이 내가 반대만 하지 않았어도 아들은 벌써 자식을 보게 하였을 텐데….

아들은 대학시절 여학생들로부터 인기가 좋았다. 일찍이 신붓감을 몇몇 데려와 선을 보이곤 하였는데 그럴 적마다 나무라며 지금은 공부할 때라고, 공부에만 몰두하라고 타일렀다. 아들은 `이 세상에서 아버지가 이순신장군 다음으로 존경스런 분'이라며 내 말이면 끔뻑하고 이제껏 한 번도 내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 드디어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뒤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가정도 좋고 성격도 원만한 아이였다. 부모는 고위직 공무원이면서 면허를 빌려 건축사업도 하고 부동산중개업에 축산업까지 겸하는 능력자로 부와 권세를 두루 갖추고 있어 누구라도 탐낼만한 혼처였다.

한창 혼사가 진행 중일 즈음 엄청난 사건이 터졌으니 그야말로 벼락 맞기보다 어렵다는 복권사건이다. 며느리 될 아이가 35억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35억. 내 능력으로는 감히 헤아리기조차 감당할 수 없는 숫자의 돈이다.

때를 같이해 또 다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러니까 안사돈 될 분이 신이 내렸다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신이 들렸다면 무당이 아니던가. 무당은 대를 잇는다고 했다. 어머니가 무당이면 그의 딸에게로 옮겨 받는다는 말이다. 며느리 될 아이가 무당이 된다? 아들을 불러놓고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들아. 나는 도저히 무당 며느리를 얻고 싶지 않다.” 아들은 며칠 뒤 “네 아버지 뜻에 따르겠습니다.”

아들은 곧 또 다른 며느릿감을 데려왔다. 지금의 며느리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집 아이이긴 하나 마음씨가 비단결 같고 순수하다. “혼수니 뭐니 아무것도 해오지 말거라. 모든 것은 내가 다 준비할 터이니 그저 몸만 오거라”

결혼 후 1년 만에 손주를 보았다. 남들보다 늦은 감은 있으나 너무나도 귀엽고 예쁜, 그것도 손녀다. 단풍잎 다 지기 전에 이번 주에는 손녀를 데리고 문경 관문이라도 갈 요량인데 미세먼지나 끼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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