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의 향기 그리고 버킷리스트
가을 끝자락의 향기 그리고 버킷리스트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8.11.1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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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늦은 가을날, 손아귀에 움켜쥐고 달려온 세월을 펴 보니 불혹지년이 지나 먼발치 중년고개를 넘어선 나이가 마른 낙엽처럼 애처롭게 매달려 있었다. 가을 앓이를 하는 양 중년이란 단어가 무겁게 짓눌러 족쇄를 채워 놓은 것처럼 무거운 공기가 집안에 맴돈다.

목선을 타고 흐르는 찬기로 어깨가 움츠러드는 요즘, 사계절을 인생에 놓고 본다면 마흔은 여름이요 중년은 가을 문턱이다. 공자가 말했다. “내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어 서른에 입신했으며, 마흔이 되니 세상일에 미혹되지 아니하고 쉰에 하늘의 명을 알았다. 예순에 귀가 순해지고 일흔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좇았으되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고 했다. 이처럼 쉰에 하늘의 뜻을 알았으니 중년의 가을, 사계절로 본 중년은 계절만큼 아름다운 시작이다. 마흔, 여름처럼 뜨거운 열정이고 중년의 가을, 어떤 색채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완숙함처럼 황홀한 풍경을 연출해 주지만 난 언제나 채워도 빈자리다.

다이어리에 꼭꼭 저장해둔 버킷리스트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중 나 홀로 섬 여행이 이었다. 유엔자문위원인 한비야님의 꿈의 철학에 의하면 꿈을 가진 사람은 두 부류라 했다. 꿈을 꾸는 사람과 꿈을 이루는 사람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멋진 꿈을 버킷리스트에 간직만 한다면 꿈을 꾸는 사람이기에 시간이 아까웠다. 한 걸음씩 하나씩 리스트를 성취하기로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가을이 가기 전에 울릉도를 홀로 다녀올 요량으로 서둘러 예약을 했다.

언제부터인가 다 닳아빠져 삐걱거리는 돌쩌귀처럼 마음도 몸도 예전 같지 않아 의욕이 없어 도전보다는 그 자리에 안주했고, 여기저기 녹슨 돌쩌귀소리가 나면서 마음의 빈방이 하나 생겼다.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감이 빈방을 채우려 할 때, 다행히도 버킷리스트 하나를 챙겨든 거였다. 여행사에 예약하곤 날짜가 성큼성큼 다가오면 올수록 설렘과 홀로 섬 여행의 긴장감으로 돌쩌귀소리는 더 요란하게 울렸다.

향나무군락 때문인지 유일하게 뱀이 살지 못하고 바람, 물, 돌이 많다 하여 삼부라 불리는 울릉도의 첫날, 물이 많음에도 저수지가 없는 것이 특이했다. 기상예보와 달리 쏟아지는 가을볕과 높은 구름, 햇볕이 구름을 뚫고 기암괴석 위로 부서지는 빛내림과 어우러진 풍광은 감히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한참을 셔터를 눌러대니 물끄러미 현지가이드는 이런 내 모습이 외려 신기한 모양이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독도 땅을 밟아 본다는데 어찌나 쾌청한지 최동단 바위섬 독도를 무난히 다녀왔으니 횡재한 기분이다.

이튿날, 늦가을임에도 유난히 포근한 날씨와 달무리가 예사롭지 않다며 섬주민은 내일 기상이변이 있을 거라며 자연으로부터 기상을 예측한다. 파고가 높아 이튿날 이른 아침에 뭍으로 출항을 못하면 며칠 동안 울릉도에 칩거생활을 해야 한단다. 다음날 새벽, 기암절벽과 수평선 사이에 울릉도를 환상적으로 붉게 물들이는 아침노을, 비가 내릴 징조다.

해가 중천에 뜨기도 전, 거센 풍랑이 일렁이는 바다 한가운데를 달리는 여객선 창문에 기어이 참았던 굵은 가을비를 쏟아낸다. 돌아보니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거센 풍랑이 일던 바다처럼 불혹도 지천명도 지났으니, 되짚어보면 중년의 은은한 향기는 시들지 않는 마음의 향기였다. 마른 잎이 굴러가는 가을 끝자락,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보다 감을 툭 따듯 기운차게 오늘, 다이어리버킷리스트에 미션완료 동그라미 하나를 커다랗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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