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의 퇴보가 당당해진 까닭
한국당의 퇴보가 당당해진 까닭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11.11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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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그가 말한 칼자루는 허세로 간주되고 있다. 국민의 기대를 충족할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전원책 변호사가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위 위원을 맡았을 때 한 방송에서 한 말이다. 전 변호사는 이 발언에 발끈했지만, 결과적으로 예상은 적중했다. 전 변호사는 취임 한 달 만에 퇴출됐다. 그것도 문자로 해촉을 통보받는 모욕적 절차를 통해서였다.

전 변호사가 월권으로 경질을 자초한 면도 있지만, 과연 한국당이 쇄신과 변혁에 대한 절박감을 갖고 그를 영입했는지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 궤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인적 청산과 건전한 보수적 가치를 실현해 갈 새로운 인재의 영입은 비상대책위가 수행해야 할 핵심과제였다. 이를 외부인사들을 영입해 만든 조강특위에 하청한 자체가 `스스로 당을 개혁할 의지도 역량도 없다'는 고백이나 다름없었다.

전 변호사도 당의 이런 무기력과 무의지를 감지하고 샛길을 택했는지 모른다. 그는 대다수 국민이 예상한 상식적 방향과는 다른 길로 나갔다. 조직 강화가 아니라 옛 새누리당으로의 회귀에 주력했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잘못 됐다', `태극기 세력도 우군이다' 등 친박의 재기를 부추긴 발언에서 그런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가 치겠다는 `보수 빅텐트'도 박근혜 정권에 종사했던 새누리당의 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이 그를 해촉한 사유에 이 같은 반개혁적 행위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는 전당대회 일정을 놓고 당과 대립하다 쫓겨났을 뿐이다. 다시 말해, 그가 당을 과거로 되돌리기로 작정하고 구사한 언행들은 방관 내지는 묵인됐던 것이다. 비대위에서 조강특위로 이어진 실패의 연속은 한국당은 물론 한국 정치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절망적이다.

한국당의 퇴보는 개혁과 청산을 입으로만 외쳐대는 더불어민주당의 현재와 무관하지 않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당은 민주당의 부진에서 자신들의 뒷걸음질에 대한 자신감을 얻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국회 특수활동비를 즉각 폐지하라는 국민의 명령에 한국당과 함께 저항했다. 거세진 여론에 마지못해 굴복했지만 개혁정당 이미지에 큰 의문부호를 남겼다. 한국당이 제기한 공기업 고용세습 문제는 사실과 다르다며 결사적으로 방어했다. 야당 의원들이 연루된 강원랜드 채용비리까지 함께 털자는 정의당의 제안이 한국당의 예봉을 꺾는 바람에 한숨을 돌렸지만, 개혁 의지는 더욱 평가 절하됐다. 지금 정권은 공기업 낙하산 인사 때문에 코너로 몰리고 있다. 야당 시절 민주당은 청산해야 할 적폐 1호로 이 문제를 꼽았다. 대선캠프 출신, 코드가 맞는 인맥, 더불어민주당 출신을 지칭한 `캠코더 인사'라는 조롱을 받지만, 일언반구 해명도 없다. 이제 “도대체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지지자들로부터도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 개혁은 답보에 빠져 있다. 대통령은 대표성과 비례성 강화를 위한 선거제도 개선을 공언했다. 그러나 지금 정치개혁특위에 임하는 여당의 미지근한 태도에서 대통령의 의지는 읽히지 않는다. 기득권 고수를 위해 한국당과 담합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올 정도다. 사법 개혁도 산으로 가는 모양새다. 검찰총장은 그제 국회에서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위험하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개혁의 칼날이 무뎌지자 검찰이 용기를 얻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집권은 스스로의 역량이 아니라 광장의 촛불과 보수정당의 자멸을 토대로 이뤄졌다. 쟁취한 권력이 아니라 시민혁명을 통해 부여받은 권력이라고 봐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라는 지상명령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개혁을 견인하기는커녕 야당으로부터 도덕성 공격까지 받는 처지가 됐다. 민주당의 초반 개혁 드라이브에 위축돼 과거 청산을 고심했던 한국당은 이제 여유롭게 그 과거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개혁과 쇄신을 솔선하며 야당을 추동해야 할 정당이 책임을 방기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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