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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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1.0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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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칼럼니스트

 

길을 걷는 중에 역한 담배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10여 미터쯤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는 사람을 발견했다. 담배연기는 대기 중에 흩어지지도 않고 화살처럼 곧장 날아왔다. 담배피우는 사람의 뒤를 따라 걷는 일이 이렇게 고역스런 일인지 미처 몰랐었다. 빠른 걸음으로 그를 앞지르며 길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아 달라고 한마디 했다. 그 사람이 곧바로 미안하다며 담뱃불을 껐기 망정이지 시비가 될 뻔했다.

워낙 담배 필 공간이 줄어들다 보니 흡연자들의 불만이 높다. 세금을 내면서도 죄인 취급받는 것은 모순이라며 흡연자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어쩌랴, 담배는 이미 국민의 공적이 되어버린 것을.

나도 한때는 애연가였다. 하루에 두 갑 이상을 피웠다. “나는 이 세상에 담뱃불을 빌리러 왔다.”는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하며 담배예찬에 열을 올렸었다. 그리고 담배의 역사를 역설하며 담배는 인간의 유전자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담배는 기원전 16,000년 전부터 세상에 있었던 식물이고, 페루와 에콰도르의 원주민들은 기원전 5,000년부터 기원전 3,000년 사이에 담배를 재배했다고 하니 인류역사와 함께한 식물이라는 것과 그들은 담배를 신과 소통하는 제 의식에 사용했는데,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기도였고 연기는 기도의 전령이었다는 것, 그리고 담배를 태울 때 일어나는 약간의 환각현상과 민감해지는 정신은 평소와 다른 세계로 안내해주는 초자연적인 힘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서였다.

이런 담배와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 담배는 내 인생의 잊지 못할 순간마다 나와 함께 했었다. 담배연기 자욱한 다방의 한 귀퉁이에서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들으며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공상의 나래를 펼치며 피웠던 `신탄진', 군대에서 저수지 얼음판 위를 알몸으로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며 피워 물었던 `화랑',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가 흐르는 찻집에서 비를 맞으며 떠나가는 여자 친구를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내뿜던 `청자' 연기, 백수 탈출을 기뻐하며 함께 했던 `은하수', 며칠 밤을 지새우는 철야작업을 하며 편집기 앞에서 피워 물었던 `88', 최루가스 메케한 거리를 질주하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디스', 그리고 `레종'까지.

담배를 피우는 동안 몇 차례 금연을 결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남들보다 유독 심한 것 같았던 금단현상과 의지결핍으로 작심삼일을 넘긴 적이 없었다. 이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담배와의 인연은 새 생명과의 인연 때문에 끝나고 말았다.

어느 날, 시집간 딸이 찾아왔다. 표정은 미안한 듯 보였지만 목소리는 단호하게 담배를 끊으라는 통보였다. 이제 곧 아기가 생기는데 자신은 견디며 살았지만 아기에게까지 담배연기를 마시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의 고민은 몇 개월 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번뇌의 시간을 보낸 후 내린 결론은 새 생명을 위해 담배를 끊는 것이었다.

절실한 이유가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총량의 법칙에 의해 피울 만큼 피웠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금연 이후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구수했던 담배냄새가 역겹도록 싫어졌다. 흡연자가 옆에 오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가 되었다.

담배를 끊고 난 이후의 좋은 점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눈이 맑아지고, 콧속이 시원해지는 등의 건강뿐만 아니라 얼굴이 깨끗해지고 입술이 선홍빛으로 살아나는 미용효과도 훌륭하다. 거기에 경제효과까지. 그리고 나만 모르는 냄새를 옆 사람들에게 풍기며 불쾌감을 주는 일이 사라진다는 것도 금연의 좋은 점이다.

하지만 담배의 순기능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흡연자들의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정부가 담배를 전매하고, 그 판매액에서 많은 세금을 거두고 있으면서 흡연자들만 옥죄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흡연자와 비 흡연자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조화로우면서도 절묘한 정책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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