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보내다
가을을 보내다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8.11.0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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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박명애 수필가

 

중대 사자암에서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길. 산모롱이 돌아드는 돌계단 앞에서 잠시 주춤거린다. 마음을 산란하게 흔들던 원색들이 사그라지는 숲은 조금쯤 적막하다. 어느새 마주 보이는 산 능선에서는 푸르스름한 안개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두워지기 전 산에서 내려가려면 서둘러야 하리라. 마른 잎 부비며 건너오는 바람이 서늘해 웃옷을 단단하게 여몄다. 운동과 담쌓은 몸은 계단을 오를수록 무게를 더하는데다 허벅지도 당기고 무릎도 시원찮다. 격세지감이다. 일요일 새벽마다 날다람쥐처럼 산을 오르내리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산이라면 더럭 두려움부터 느끼는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15분 정도 소요된다는 안내문이 반갑다.

무념무상. 계단을 오른다. 이따금 어린 다람쥐가 꼬리를 흔들며 튀어나왔다가는 마른 잎 속으로 숨어든다. 말괄량이 같은 다람쥐 재롱 덕에 가쁘게 달아오르던 숨이 한결 가벼워졌다. 눅눅한 한기가 더해가는 시간 아스라이 독경소리가 들린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듯하면서도 간간이 쉼표가 끼어들며 `석가모니불'이 `모니불 석가'와 함께 흐른다.

`석가모니불'이 노래가 되어 흘러나오는 적멸보궁은 홀로 언덕 위에 오뚝 서 있었다. 단아하고 소박하다. 온기를 잃어가는 저녁 빛과 어우러진 청기와는 고풍스럽고 용마루와 합각마루에 얹은 용두가 근엄하고 우아하다. 그 기운에 비로봉에서 흘러나온 능선들이 납작 엎드린 듯 사위가 적멸보궁을 감싸고 있다. 스스로 허리가 굽고 손이 모아진다. 비슷하면서도 주변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각기 다른 표정을 갖고 있는 산사의 풍경은 늘 경외감을 준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사찰이기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사실 온전한 불자도 못되지만 방금 개금한 듯 화려하게 번쩍이는 불상 앞에서는 마음이 숙연해지지 않는다. 법당에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하고 그냥 돌아설 때도 있다. 그 또한 신심이 부족하고 편견에 가려진 마음 탓이겠지만 유명사찰마다 거대하게 이루어지는 중창불사는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화려하게 중창된 새 건물과 웅장한 석탑, 조형물들은 사찰이 가진 아늑하고 고졸한 멋을 지우고 위압적이다 못해 경박하다. 그런데 수미단 위에 붉은 방석만 놓인 세 칸 보궁에서 나는 감히 서원을 세우지도 못한 채 삼배를 올리고 눈을 감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기도하고 서원을 올렸을까. 알 수 없는 간절한 기원들이 독경소리에 녹아 마음으로 스며든다.

오대산 적멸보궁엔 사리탑이 없다. 다른 적멸보궁에는 사리를 모신 자리가 분명하게 남아있어 방등계단이나 사리탑을 조성해 놓았는데 오대산에는 어느 곳에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적멸보궁 뒤에 진신 사리를 모시고 있다는 표식인 마애불탑이 자리하고 있을 뿐. 그래서일까 적멸보궁이 자리한 봉우리 전체가 진신사리를 모신 불탑처럼 경건하게 다가온다. 염불 소리를 등지고 앉아 부드럽게 흘러가는 능선들을 묵묵히 바라본다. 곁에 있는 벗들이, 바람이, 먼 새 울음이, 오늘 하루가 그저 감사해 콧등이 시큰해진다. 잠시 나를 잊으니 번뇌도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 그리고 이 시간이 극락이다.

하산하라는 듯 산사에 불이 들어온다. 내려오며 기도하듯 가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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