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어른
어쩌다 어른
  • 배경은 수필가
  • 승인 2018.11.0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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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배경은 수필가
배경은 수필가

 

한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비록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소녀는 할아버지와 함께 즐겁게 자랐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바다에 대한 신비로운 생각으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기쁨에 겨워하기도 했답니다. 할아버지는 소녀의 끝도 없는 호기심에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소녀의 더 없는 좋은 친구가 되어 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두려워진 소녀는 잠깐만 마음을 빈 병에 넣어 두기로 했지요. `마음이 아플까 봐'말이죠. 그 후로 소녀는 마음은 아프지 않았지만, 세상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사라진 채 어른이 되었습니다. 몸은 어른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마음은 어릴 적 할아버지를 잃은 소녀의 상실감 그대로였지요. 무엇을 경험하고 느껴도 감정이 되살아나지 않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지요. 소녀의 마음만은 안전했으니까요. 그러는 사이 빈 병에 담아둔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몹시 불편했겠지요. 그러다 우연히 세상에 대한 호기심 많은 작은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코끼리가 헤엄쳐서 바다가 출렁거리는 거예요?” 바닷가에서 모래 놀이를 하던 작은아이가 물었지요. 아이의 호기심에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소녀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빈 병에 마음을 넣어 둔 덕에 마음은 안전했지만 자신의 정서나 감정을 말로 표현하거나 공감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만 것이지요. 비로소 소녀는 마음을 넣어둔 병을 깨뜨리고 싶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깨지지 않던 병이 작은 아이가 병을 집어들고 손가락을 넣어 갇혀 있던 마음을 꺼내주었지요. 마침내 소녀는 마음을 되찾고 할아버지를 잃은 아픔을 마주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호기심 많고 세상을 즐거워하던 그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인정하고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호기심을 채워 나가며 세상과 소통합니다. 이제 더 이상 마음이 아프다고 숨어버리거나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삶을 살게 되었답니다.

「마음이 아플까봐」그림책은 표지가 노란 색깔입니다. 색채심리에서의 노란색은 자존감 또는 희망을 나타냅니다. 미술에서의 노랑은 환희와 기쁨을 말하기도 하죠. 아마도 작가는 소녀의 자존감이 내면에 생동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릴 적 크고 작은 상처에 노출되어 그 감정을 잘 추스를 기회도 없이 그냥 몸만 성장하는 어른이 되곤 하죠. 어쩌다 어른이 되어 살아가지만 내가 어떤 정서를 갖고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별로 관심 없이 그저 주어진 환경에 쫓기듯, 혹은 최선을 다하느라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기도 합니다. 그러나 회복의 기회는 언제든지 찾아오게 마련이지요. 소녀가 작은아이를 만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의 상실감이나 주눅 듦은 누구 때문이 아니라 돌봐주었어야 할 자신의 정서를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어릴 적, 상처받은 어린 자아를 만나 꼭 안아주고 보듬어주며 여기까지 잘 왔노라고 위로와 격려하는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치유의 과정이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내면의 아이가 제대로 된 성숙을 이룰 테니까요. 그리고 좀 더 자유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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