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나무의 신음
미세먼지, 나무의 신음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11.0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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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오래된 우리 동네 낮은 아파트 단지에 현수막이 붙었다. 올 연말까지 이주해야 한다는 공고인데, 재건축조합이 결성되더니 결국 그동안 정 붙이고 살아왔던 이웃들이 보금자리를 떠나게 되는 모양이다.

4층짜리 작은 평수의 아파트가 올망졸망 모여 있는 이 아파트 단지는 비슷한 처지의 여느 아파트처럼 나이 든 사람들만 남아 애잔한 세월을 달래고 있다. 그마저도 이제 이주가 완료되면 지금 아파트의 파괴될 것이고, 사람들의 흔적 또한 다시 채워질 때까지 사라질 것이다.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지만 나는 이 아파트를 무척 사랑한다. 내가 아는 한 이 아파트는 청주에서 가장 많은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택건설사가 성의없이 조경을 한 것과는 달리 나무의 종류도 다양해 봄에는 갖가지 꽃들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짙푸른 나무 그늘 사이로 청량한 바람이 흐르며,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조화를 이룬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에도 곳곳에 심어진 향나무며 측백나무, 소나무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상록수들이 하얗게 덮은 눈과 어우러지는 절경을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이 떠나고 높은 층수의 새 아파트가 첨단을 자랑하며 세워질 때 남아 있을 나무가 있겠는가. 이 아름다운 도시 숲은 사람들이 이주하는 것처럼 원래의 모습을 잃고 말 것이다.

20년 가까이 방황하던 밀레니엄 타운이 최근 공사를 시작했다. 학생문화회관 주변 그 땅에는 원래 나무가 많았다. 그중에 특히 가을이면 무리지어 하얀 꽃을 피우던 까마중은 키 작은 관목임에도 밀레니엄 타운의 깃대종이 될 수 있겠구나 여겨왔다.

그러나 나는 요즘 새벽마다 이 길을 걸으며 나무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하는 절망을 경험한다.

인간들은 어쩌다 개발만 하면 우선 초목부터 제거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사람들의 손길을 타지 않고 제 스스로 잘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살려가면서 사람들이 사용할 건축물을 짓는 일은 왜 시도조차 되지 않는가. 함부로 초목을 베어내고 파헤친 자리에 기껏 인공의 조경을 해야 하는 무리를 어쩌면 이리도 고집스럽게 계속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청주는 아직은 식물의 북방과 남방한계선의 경계에 놓인 지역적 특성에 따라 참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풀이 자연적으로 자라는 곳이다.

황무지가 극상의 숲을 이루는 과정을 `천이'라고 하는데, 이끼나 민들레 같은 낮은 풀 종류에서 시작돼 초목류가 지배하는 초원을 거쳐 키 작은 관목과 큰 키의 교목이 자리 잡으면서 비로소 숲이 이룬다. 그 숲 속에는 나무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침엽수를 거쳐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는 극상의 숲으로 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지금은 물론 인간의 간섭으로 인해 이러한 자연적 되풀이를 절대로 목격할 수 없지만 말이다.

몇 해 전 청주에서 1004만 그루의 나무심기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진 적이 있다. 신봉동의 작은 손바닥공원에는 그 운동을 기념하는 식수 행사를 했던지 표지석은 남아 있는데, 나무는 그만 베어지고 없더라.

나는 가을 나무가 가장 사랑스럽다. 벚꽃이거나 개나리 등 잎보다 먼저 만발하는 봄꽃도 있지만, 가을 단풍은 나무 전체가 꽃으로 뒤덮인 듯한 장관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무가 다른 도시에 비해 청주라는 도시에는 너무 부족하다. 대구 김광석 거리 앞 큰 도로에 즐비한 나무들. 그리고 서울 도봉구를 비롯한 동북4구의 거리마다 붉고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나무들이 유난히 부러웠던 올 가을 여행길.

청주 들머리에 우리를 자랑스럽게 했던 플라타너스 나무 터널은 차로를 확장하면서 옛 모습은 온 데 간데없이 초라하고, 내 고향 청주에는 무슨무슨 나뭇길이라고 이름 붙일 곳 한군데가 없다. 상가 앞에 심어 놓은 나무들은 간판을 가린다는 인간의 욕심으로 곳곳에서 잘려나간 채 텅 빈 거리의 맨살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 사이 우리는 미세먼지의 `나쁨'과 `매우 나쁨'의 선두를 다투는 도시의 시민이 되고 있다. 나쁨이 익숙한 곳에서 좋은 일이 생기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11월 나무 심고 가꾸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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