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라는 옷
공무원이라는 옷
  • 류현우 청주시 북이면사무소 주무관
  • 승인 2018.11.0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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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류현우 청주시 북이면사무소 주무관
류현우 청주시 북이면사무소 주무관

 

사람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을 때, 반팔 반바지의 편한 옷차림일 때, 운동복을 입었을 때 행동이나 풍기는 분위기가 모두 다르다.

나는 대학 졸업 후 공무원이라는 옷을 입었다. 이 옷을 1년 조금 넘게 입은 나는 조금씩 공무원이라는 기준에 맞춰서 행동하게 되고 그러한 기준에 맞춰 생각하게 됐다.

가장 크게 바뀐 점은 내가 맡은 직무에 따라 예전에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계속 눈에 밟히게 된 것이다. 공시지가 업무를 봤을 때는 건물이나 길을 보며 도로 조건이나 지형을 눈여겨보게 되고, 공시지가가 높을지 낮을지 생각을 떠올려보게 됐다. 인터넷 포털 인기 검색어에 `공시지가'라는 단어가 올라오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집중하고 긴장하게 됐다. 공시지가는 세금 산정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대출의 기준으로도 쓰일 수 있다. 각 민원인마다 요구 조건이 다르기에 누군가는 공시지가가 올라가길 바라고, 누군가는 공시지가가 내려가길 바란다. 요구 조건이 각자 다르기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문의전화가 오곤 한다. 업무 담당자라는 직위가 주는 책임감이라는 게 무엇인지 많이 느끼고 있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난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수많은 가축이 죽고 작물이 시들어 죽었다. 매일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 피해 방지를 위해 폭염대비 안내를 하고 현장을 돌았다. 많은 농가가 힘들어 하고 속상해했다. 돈과 노력 모두 들여 힘들게 키운 가축과 작물이 죽다 보니 때로는 공무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속상하고 화난 농가의 마음을 알기에 그 심정을 이해한다. 농가의 어려움을 공감해주고, 추가 지원 사업을 통해 그들의 어려움 조금이나마 도왔다.

또 있다. 예전에는 눈이나 비가 오거나 전염병이 돈다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만 지금은 큰일 났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게 된다.

제설, 산불, 방역 등의 모든 업무가 공무원의 몫이고 책임이기에 공무원이라는 옷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항상 업무를 할 때는 힘들지만 그로 인해 바뀐 모습을 보면 뭔가 모를 뿌듯함도 느낀다. 지나가다가 팬 도로나 꺼진 가로등이 보수된 것을 볼 때, 도로변에 버려진 쓰레기가 치워져 도로가 깨끗해졌을 때, 눈으로 가득 덮인 도로를 새벽에 나와 치울 때가 그렇다. 이전에는 과연 이런 업무는 누가 하나 싶었던 모든 것들이 대부분 공무원이 하고 있었다. 예전의 나처럼 많은 시민들은 이런 일들을 누가 하는지 모를 수 있다. 우리의 노력을 비록 몰라줄지라도 우리 스스로는 알고 있다. 공무원이라는 옷은 가격이 비싸진 않지만 희생정신과 보이지 않는 가치를 내포하고 있음을. 그 옷을 입고 있는 우리의 행동 또한 값지고, 값져야 함을 되새겨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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