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길을 걸으며
낙엽길을 걸으며
  •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8.11.0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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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백인혁 원불교 충북교구장

 

학창시절 지리산으로 가을 산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산행 진행 요원으로 선발되어 가야 할 코스를 답사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예정된 코스 중 돌아가는 길이 있었는데 출발 시각이 늦어져 그렇게 가면 지리산에서 나오는 막차를 탈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중간을 가로질러 올라갔다가 빨리 내려오자며 길이 없는 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산죽이 띠를 이루며 자생하고 있는 곳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산죽을 헤치며 지나자니 힘이 들었습니다. 정작 가고자 하는 장소에 이르러 시간을 보니 길을 따라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해 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길이란 여러 사람이 다녀보고 가장 편하고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지기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데 새로운 길을 만든다고 좀 더 빨리 가겠다고 가로질러가면 좋을 줄 알았더니 결국 길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하고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흙이 쓸려나가 나무계단으로 길을 만들어 놓은 곳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기가 힘이 드는지 자꾸 옆으로 길을 만들면서 다닙니다. 자연히 계단 옆에 새로운 길이 생깁니다. 길은 걸으라고 생기는 것인데 편하고 쉽고 힘이 덜 들어야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갑니다.

요즘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삶의 패턴이 다양해짐에 따라 길도 다양해지고 편리해졌습니다. 이동 수단에 따라서도 많은 길이 생겼습니다. 자동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먼 곳은 비행기를 이용한 하늘길을 달리고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나를 때는 뱃길을 이용하는가 하면 드론을 이용하는 등 상상을 초월한 다양한 길이 생겼습니다.

어느 길을 가든지 가는 사람의 마음이지만 그래도 편리한 길 가기 수월한 길 자기에게 맞는 길을 찾아갈 것입니다. 편리한 길 가기 쉬운 길이란 그래도 수많은 사람이 다닌 길일 것입니다. 홀로 외길을 가기도 하지만 그 길은 개척하며 나아가기에 힘들고 외롭고 지치는 길입니다. 그래서 선인들은 군자는 큰길로 간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상은 어느 길을 가든지 가는 길을 계속 가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한우물을 파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수많은 길이 서로 연계해 있는 관계로 어느 길로 가든 다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리거나 공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어느 길로 갈 것인지 교통수단은 무엇을 이용할 것인지 선택이 중요합니다. 현명한 선택이 꼭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현명한 선택은 스스로 가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지를 설정해야 합니다. 다음은 자신의 능력과 자기의 취향과 주위 여건 등을 고려해 거기에 합당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미 정해진 길을 가고 있는 분들은 가는 길을 탓하지 말고 쉼 없이 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길만이 가진 좋은 점들로 인해 그 길을 선택한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도 자주 오가는 길이 있나 봅니다. 가만히 오솔길을 걸으면서도 누구를 상상하면 흐뭇하고 누구를 떠올리면 언짢고 어느 장소를 떠올리면 편안함을 느낍니다. 마음이 어디를 가야 가장 편안할까요? 아마 고향에 가면 편안하고 엄마 품에 가면 포근할 것입니다. 마음의 고향은 어디일까요? 마음의 엄마는 누구일까요?

어릴 적 엄마 품을 일찍 벗어난 사람일수록 더 불안하고 고향을 일찍 떠난 사람일수록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불안한가요? 아니면 외로운가요? 가을의 끝자락에서 낙엽을 밟으며 마음의 고향과 더불어 수많은 길 중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에 대해 반추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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