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 김권남 청주시 금천동 주민센터 주무관
  • 승인 2018.11.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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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남 청주시 금천동 주민센터 주무관
김권남 청주시 금천동 주민센터 주무관

 

“노인에겐 힘든 세상이야. 세월을 막을 수 없어.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아. 그러기를 바라는 건 부질없는 짓이지.”

지난 2008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에 나오는 대사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늙은 보안관 주인공에게 한 노인은 이런 말을 건넨다.

요즘 미국과 유럽에서는 `서드 에이지(Third Age·40세 이후 30년 동안 인생의 2차 성장을 통해 자아실현을 추구해가는 단계)'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 시기가 인생의 전성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은 `후반생 학교(the latter half of one's life)'라는 강의를 만들었다. IBM 같은 대기업은 퇴직을 앞둔 직원들이 교사·공무원 등 다른 분야로 재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직업전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오랜 세월 회사를 위해 힘쓴 직원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이런 노력이야말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은퇴하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리타이어(retire)는 `은둔생활로 돌아가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retires에서 유래됐다. 그러나 은퇴가 곧 퇴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노인이 무기력한 존재로 사라지는 나라는 이들이 축적한 인생 경험과 연륜도 함께 잃게 된다.

오래 살길 바라면서도 오래 살게 되면 늘어날 노년기에 무심한 것도 진기한 일이다. 젊음만 강조하고 나이 많은 걸 죄악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그 긴 노년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때로 늙었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면서 오래 살기만 하면 운명이 좋은 건가.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고 인류에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으면서 백 살을 사는 것이 의미가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노령 인구가 빠르게 늘어가는 우리 사회는 물리적 나이보다 더 빨리 늙도록 부추긴다. 늙는 것은 악이 아니다. 언젠가는 모두 노인이 된다. 노인이 되지 않는 건 노인뿐이다. 따라서 조만간 우리가 당도할 노인을 위한 나라를 심리적으로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령 인구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그들의 사회적 공간을 확대하면서 말이다. 일흔 살. 누가 그 나이를 한물갔다고 말하는가. 여든이 되려면 아직 10년이나 남았거늘.

노인 폄하는 한국 사회가 자랑하는 `빨리빨리'와 새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새것 신드롬'과 관련이 있다. 한국 사회의 시간속도를 한 템포 늦추지 않는 한 한국은 결코 노인을 위한 나라가 될 수는 없으리라.

게다가 계급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기본적으로 계급적 개념이다. 지식인이나 정치인, 재벌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노인이라고 불리지 않으며, 그들도 스스로를 노인으로 정체화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민에게만 노인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이것은 나이 듦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늙음은 나이 듦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다. 하긴 누가 교황과 문재인 대통령을 노인이라고 해서 감히 차별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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