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늘리기의 딜레마
국회의원 늘리기의 딜레마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11.0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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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국회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020년 총선 때부터 적용될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이 특위가 수행할 과제다. 승자독식 구조의 소선거구제와 이를 제대로 보완하지 못하는 비례대표제를 손보는 것이 핵심이다. 중앙집계 방식의 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정당 지지율이 의석배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선거로 표출된 민의가 결과에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례성을 높여 다양한 계층과 세력의 국회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요구도 꾸준히 제기됐다.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치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투표방식은 현 정당명부제와 같지만 선거 후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의석을 할당하는 점이 다르다. 지역구 당선자가 할당된 의석에 미달하는 정당은 나머지 의석을 비례대표 후보자로 채우는 방식이다. 당선자를 많이 내지 못한 소수정당이 정당득표율의 과실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바른미래·민주평화·정의당 등 소수정당들이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100대 국정과제로 이 제도를 제시했다.

문제는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비례대표는 47석으로 지역구(253석)의 20%도 안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려면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이 2대 1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관되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권장해온 선거관리위원회도 2대 1 비율로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현 국회의원 정수 300명으로 이 비율을 맞추려면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늘려야 한다. 반대로 지역구 의석은 53개나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들은 환영하겠지만 현역의원 53명의 명줄을 끊는 개혁이 불러올 저항은 쓰나미급이 될 것이 틀림없다. 연동형 비례제를 추진하는 정당도 내분에 휩싸일 공산이 높다. 정개특위는 파행으로 흐르고 선거제 개혁은 문턱에서 좌절될 수 있다. 이래서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대안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정의당은 정수를 360명으로 늘리면 지역구를 손보지 않아도 연동형 비례제를 시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 국민 반감을 고려해 국회예산을 동결함으로써 증원에 따른 추가 예산은 없도록 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미래당과 평화당도 예산확대 없는 정수 증원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의원 증원을 적극 반대하는 정당은 자유한국당이다. 정개특위에서 한국당은 중대선거구제를 제안하며 의원정수 확대는 반대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의원 늘리기를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당의 주장이다. 오히려 의원을 줄이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며 200명으로 줄이자는 의견까지 나온다. 한국당이 2~3등도 당선되는 중대선거구제에 매달리는 것은 텃밭까지 위협받는 절박한 사정을 감안할 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반대하며 국민의 뜻을 구실로 다는 모습은 옹색하다.

국민이 국회의원 증원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강한 거부감의 본질은 국민이 국회의 무능에 넌덜머리가 나 신뢰를 완전히 접었다는 뜻으로 해석돼야 한다. 국회는 기관 신뢰도 조사를 할 때마다 부동의 꼴찌다. 엊그제 리얼미터가 실시한 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서도 국회는 1.8%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국민들의 증원 반대는 바닥에 떨어진 국회의 위상이 초래한 부수적 현상일 뿐이다. 국회의원 증원에 대한 논의 자체를 반대하며 국민의 뜻을 들먹이는 것은 실상을 호도하는 비겁한 자기변론에 불과하다.

사실 우리나라 국회의원 1인당 담당 국민은 17만1000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아주 높은 편이다. 학계에서도 증원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수를 늘려 지역구와 당략에 매몰돼 의정을 소홀히 하는 지역구 의원들을 비례대표로 대체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민이 용납하겠느냐'는 한국당의 입장에서는 일 잘해서 국민의 믿음을 되찾겠다는 의지나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자포자기'와 `현실안주'의 가련한 처지만 엿보일 뿐이다. 예산증액 없는 증원은 의원들이 쌈짓돈처럼 써대는 눈먼 예산과 쓸데없이 방만해진 보좌인력 절감만 해도 가능할 것 같다. 최소한 국회에 피가 돌게 하는 수혈의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한국당의 숙고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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