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빛
숨은 빛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8.11.0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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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강대헌 에세이스트
강대헌 에세이스트

 

그림을 그리는 아빠와 딸을 만났습니다. 아빠는 햇빛이 좋아서, 딸은 자유롭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답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 하나하나가 영원에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아빠 박영규 씨와 하루하루를 천천히, 즐겁게, 정성껏 살고 싶다는 딸 박현경 씨는 늘 그림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박현경의 아빠인 박영규 씨와 박영규의 딸인 박현경 씨가 각자의 그림들을 모아 한 공간에서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노래로 말하자면 이중창 같은 전시회였는데, 구경 온 사람들에게 임무를 주기도 했습니다.

“숨은 빛을 찾아라!”

아빠 박영규 씨와 딸 박현경 씨가 찾은 숨은 빛들은 모두 그림 속에 빼곡하게 들어 있더군요.

아빠와 딸이 함께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잎들과 꽃들과 하늘과 물이/햇빛의 춤사위에 시시각각 반짝입니다.//단조로워 보이는 일상 속 구석구석/수천수만 빛깔이 쉼 없이 일렁입니다.//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곳곳에/숨은 빛이 있어 삶이 아름답습니다.//우리의 하루하루 속 숨은 빛을 찾아서 날갯짓을 합니다./그림을 그립니다.'

아빠 박영규 씨와 딸 박현경 씨의 초대장이 그리 대답했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그림은 그려져야만 하고, 숨은 빛은 찾아져야만 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을 때,”신의 말씀도 “빛이 생겨라”이었잖아요.

신이 보시기에도 좋았다던 그 빛의 대부분이 숨겨져 버린 세상이 오고 만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무슨 숨바꼭질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림을 구경하던 제 눈길과 발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멈추게 했던 그림 한 점이 생각납니다. `작은 기적들'이란 제목의 그림이었습니다. 엉겅퀴 씨앗들이 하얗게 흩날리는 모습을 담은 박영규 씨의 그림이었는데, 그림 옆엔 이런 풀이가 덧붙여져 있었죠.

“울타리 너머로 당신의 꽃밭을 보았습니다. 황금 봄볕이 쏟아지고 아주 작은 풀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달려가 그 작은 기적들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들은 울타리 너머로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에게 가치 있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아빠와 딸의 전시회도 `작은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깜박, 깜박, 서로에게 눈을 깜박, 깜박, 깜박여 주다 보면 칙칙하던 공간에 숨은 빛이 드러났다”는 딸 박현경 씨의 그림 `왕순이4'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곳 구석구석에 섬세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는 아빠 박영규 씨의 그림 `숨은 빛'을 만나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아빠 박영규 씨가 그린 `부드러운 힘에 관하여'와 `아름다운 청년'과 `갈증', 딸 박현경 씨가 그린 `나의 남편'과 같은 작품들은 가족에 대한 끈끈한 사랑으로 뜨거웠지요.

그림을 그리는 아빠와 딸의 전시회는 따스하게 숨은 빛들로 일렁이는 아름다운 삶과 세상을 꿈꿀 수 있게 한 경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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