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2칙백장야호(3)
무문2칙백장야호(3)
  •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스님
  • 승인 2018.11.01 1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스님
무각 괴산 청운사 주지스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선시(禪詩)를 정리하면서 쟝르를 떠나 이 가을에 소개해 보고 싶은 불꽃이라는 시인데요.

제가 상주하고 있는 산골 초암에는 맑고 투명하게 온 도량을 붉게 장엄했던 단풍이 이제 그 잎들을 하나둘씩 떨구고 있네요. 이 시간에는 `무문관(無門關) 제2칙 백장야호(百丈野狐)를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장야호에서 說하고 있는 `인과불락(因果不落)'과 `인과불매(因果不昧)'는 서로 대비되는 말인데요. 인과는 어떤 행위에 대한 결과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폭력과 거짓을 일삼으면 마침내 들통이 나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뿌린 대로 거두는 인과응보의 법칙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우의 몸으로 태어난 그 수행자는 부처나 위대한 도인이 도덕률을 초월한 존재라고 믿었기에 `인과불락'이라고 답했지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백장 선사의 생각은 달랐다는 말입니다. 위대한 성인일수록 자신의 생각이나 언행이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행위가 불러오는 결과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그릇된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확철하게 잘 알고 있으므로 행할 것은 행하고 행하지 않을 것은 행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인과불매(인과에 어둡지 않다)라고 답하였던 겁니다. 말(言)이란 곧 방향을 가리키는 것인데 前백장은 `인과불락'이라 하여 중생을 그릇된 길로 안내하였으니 오백 생 동안 여우 몸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실존적인 데에 있습니다. 스스로 부처가 되려는 것에 있으며 죽어서야 천국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인간이 가장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려는 것이 바로 불교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가르주나는 `중론'에서 “어떤 존재도 인연(因緣)으로 생겨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존재도 공하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인연이 맞아서 혹은 인연이 서로 마주쳐서 무엇인가 생기는 것이고 반대로 인연이 다해서 혹은 인연이 서로 헤어져서 무엇인가가 소멸할 뿐입니다. 그러니 무엇인가 생겼다고 기뻐하거나 무엇이 허무하게 사라진다고 해도 슬퍼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공(空)'이라는 개념으로 `있는 그대로', 혹은 `여여(如如)하게'보는 사람 즉 깨달은 사람은 모든 것을 공하다고 보기에 그것들에 집착하지 않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우가 되어버린 스님의 잘못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요? 그는 모든 것이 인연으로 생겨난다는 것을 부정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중도란 인과관계를 절대화하는 것도 그렇다고 부정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깨달음이란 버려서 얻는 것이 아니라 버릴 것이 없음을 앎인 것이며 삶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속에서 걸림이 없는 대 자유를 만끽하며 현실을 긍정하는 삶의 진정한 즐거움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무문관 제3칙 구지수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