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맞으며
11월을 맞으며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10.3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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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어느새 11월이 왔습니다. 만추입니다. 포도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은 은행잎들과 바람에 어지럽게 흩날리는 플라타너스 잎들이 만추를 실감케 합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판에는 코스모스와 들국화와 구절초가 주인인 양 맵시를 뽐내고 있고, 늪과 산등성이에선 갈대와 억새가 바람에 서걱대고 있습니다. 산에는 다람쥐와 산토끼들이 겨울준비에 분주하고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향연이 한창입니다. 하늘에는 기러기 떼와 청둥오리 떼가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멋진 비행을 하는 11월이 이렇게 소리 없이 우리 곁에 왔습니다.

참 이상도 합니다. 이런 11월을 한두 번 맞이하는 것도 아닌데, 나이테만큼 해마다 어김없이 맞이하고 보낸 11월인데 심사가 왜 이리 무겁고 짠한지요. 딱히 내세울 건 없지만 그렇다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허송세월을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건 아마도 2018년이 주는 시대적인 무게감과 아픔 때문일 겁니다.

돌이켜보니 지난봄은 몹시 짧았고, 지난여름은 몹시 덥고 길었습니다. 찜통더위란 말도 무색한 미증유의 살인 더위가 여름 내내 한반도를 덮쳤고, 초가을에 강타한 태풍과 호우도 만만찮아 민초들이 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여름 내내 에어컨을 하루 종일 켜놓고 살아서 전기료 폭탄을 얻어맞아야 했고 냉방병으로 신열을 앓기도 했으니까요.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안된다고 돈벌이가 예전만 못하다고 아우성이고, 문재인 정권이 일자리 만들기를 국정의 핵심과제로 삼아 추진하고 있지만 역대 최고의 실업률에 청년 백수들의 한숨과 자포자기가 늘어만 갑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더욱 심화되는 등 사회 전반에 활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암울합니다. 미래가 암담합니다.

핵 없고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남·북의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북·미간에도 소통과 물밑 대화를 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와 공영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큰 건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핵 폐기에 대한 이렇다 할 진전이 없거니와 협상과정에 돌발변수도 많아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하고 유비무환 해야 합니다.

아무튼, 11월을 무탈하게 맞이한 그대에게 축하인사를 보냅니다. 살아있어서 고맙고, 할 일 있어서 고맙고, 지인이어서 고맙고, 함께 할 수 있어 고맙기 때문입니다. 아니 의지의 한국인 이어서 자랑스럽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11월은 가을의 마지막 달이자 겨울로 들어서는 달입니다. 입동(7일)과 소설(22일)이 이를 웅변합니다. 나무들이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영양소를 공급해 주고 그늘을 만들어주던 무성한 이파리들을 미련 없이 떨구어 내고 있습니다. 몸집을 줄여야 북풍한설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런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체면과 위신이라는 나뭇잎부터 떨구어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욕망과 욕심이라는 나뭇잎도 훌훌 털어내구요. 미움과 원망 한 조각까지도, 응어리진 원한마저도 제다 떨구어 냅시다.

예년보다 차가운 날씨가 이어지는 걸 보면 금년 겨울은 몹시 추울 것 같습니다. 월동준비 잘하고 감기 조심하기 바랍니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조용필이 부른 `그 겨울의 찻집'입니다. 긴 외투를 입고 그대와 낙엽이 수북이 쌓인 오솔길을 걷고 싶고 그 겨울의 찻집에 가서 차도 마시고 싶습니다. 11월이 가기 전에.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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