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 가치있게 하는 것
보존, 가치있게 하는 것
  •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 승인 2018.10.30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뒤늦게 출몰한 송충이가 감나무를 초토화했다. 단풍이 들기도 전에 앙상한 가지에 감이 주렁주렁, 게으른 주인 탓에 감나무는 송충이에게 잎을 주고, 홍시가 된 감은 새들에게 내주었다. 새들이 먹을 만큼 먹고, 행인들이 따가고 난 나머지 감이 내 몫이다.

봄에 포기 나눈 국화는 향을 내뿜으며 기품 있는 울타리가 되었다. 얼근하게 술에 취하고도 모자라 더 취해보려 국화에 코를 들이댄다. 그윽하고도 그윽하다. “좋다!” 끊임없는 손길과 시간이 만들어낸 풍요다. 듬성듬성 흙에 위치만 점했던 잔디는 벨벳처럼 되었고, 담을 대신하는 돌무더기를 경계로 나무울타리가 제법 운치를 더한다. 크지 않지만 `아버지의 뜰'은 동네 고양이와 온갖 새들, 벌레, 주변 사람들의 자그마한 숲이 되었다.

“청주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문화의 격이 있는 차별화된 상업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원래 있었던 공간의 시간성을 지속적으로 가져갔으면 합니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진화할 수 있는 숲이었으면 합니다. 숲은 다양성입니다”, “숲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잉태하는 창의성의 생태계입니다”.

빨간 벽돌 건물을 살렸으면 하는 제안에 무참하게 무시당하고, 35M의 노출 엘리베이터를 오르면서 변화하는 화면을 제안해도 먹히지 않던 팀들에게 이야기했던 부분을 다시 언급한다. 새로이 투입된 팀이다. 서로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아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재생이 아닌 개발의 잣대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열을 내면서 싸워왔던 이야기들을 다시 내뱉는다.

“청주는 기록유산의 도시라고 하면서 기록을 지워버리는 작업을 너무나 당연시합니다. 객사 터가 그랬고, 청주문화예술의 사랑방이었던 화방을 없애고, 청주시청도 존치 여부의 논쟁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지금 연초제조창의 굴뚝도 고민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오랜 시간 연초제조창의 사람이 숨 쉬었던 공기를 간직하고 있는 나무는 교통에 방해된다고 자르려 합니다. 그리 비싼 나무가 아니라네요. 안덕벌 참나무배기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람쥐도, 사슴벌레도, 나비도, 벌도 많았습니다. 나무열매로 묵을 쑤어 장에 내다 팔았죠. 좋은 육질의 돼지를 키우는 데에 참나무를 심습니다. 안덕벌의 나무는 참나무입니다. 모든 생명의 안식처가 되는 나무죠. 시간을 이어갈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덴마크, 미국, 핀란드의 건축, 문화의 전문가들이 청주를 찾았습니다. 자그마한 도시에서 공예비엔날레의 규모에 놀라고 공예비엔날레가 개최되는 도시에 이토록 놀라운 건물이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감복합니다. 그러고는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의 모습을 지켜주세요”, “기둥의 육중함과 뚫려 있는 공간의 개방감, 가능한 손을 안 대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이 생겼으니깐요. 어쩌면 시대의 흐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낙후된 도시의 생명을 넣는 것은 하드웨어가 될 수 없습니다. 콘텐츠가 반영된 하드웨어는 분명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연초제조창은 단순한 하드웨어가 아닙니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죠. 그 이야기를 찾아 이어갈 만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속되어지는 시간 속에서 하나하나의 손길과 결을 보태야겠죠.

같이 고민해 봅시다. 같이 한다는 건 행복한 것입니다. 그리 귀하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귀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손길과 시간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는 공간이 되는 것이죠. 가치 있는 것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해서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