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8.10.3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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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금란 취재3팀(부장)
김금란 취재3팀(부장)

 

1980년대 TV에서 방영된 외국영화 `슈퍼맨'을 보고 자란 세대들은 기억한다.

위험한 일이 벌어지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슈퍼맨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그 시절 아이들은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아보겠다고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뛰어다니며 영웅을 꿈꿨다.

평범한 신문기자가 슈퍼맨으로 변신하는 순간 환호했고, 영웅의 등장만으로도 행복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만나는 원장이나 교사는 아이들에게 슈퍼맨과 같은 존재다. 그들의 말 한마디, 흥얼거리는 노랫소리, 발걸음 소리까지 아이들은 기억한다. 그리고 따라하고 닮고 싶어한다.

이런 아이들의 영웅이어야 할 교사나 원장들이 요즘은 일그러진 모습으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교사들의 성추행 사건에 국회의원의 폭로로 드러난 일부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공금 유용 백태는 심각하다.

최근 영동의 모 초등학교 교사 A씨는 학생 20여 명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직위 해제됐다.

충북도교육청은 지난 15일 학부모들이 찾아와 이 교사가 학생 다수를 성추행했다는 항의를 받고 현장 조사를 벌였고 학생들과 교사를 격리시킨 후 직위에서 물러나게 했다.

앞서 충주의 모 고등학교 B교사도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도교육청이 사실 확인에 나섰다. 이 학교 여학생들은 학교 면담에서 체육 교사인 B씨가 수업시간에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과도한 스킨십을 했다고 주장했다. 도교육청은 해당 교사를 일단 수업에서 배제했다.

박용진 국회의원이 공개한 일부 사립유치원들의 공금 불법 유용은 학부모들을 분노케 했다.

아이들에겐 하늘처럼 높은 존재였을 원장이나 설립자들은 교비를 쌈짓돈처럼 명품가방도 사고 개인 차량도 구입하고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비리를 저지르는 주범이었다.

아이들의 꿈을 심어주고 미래의 꿈나무를 키워야 하는 교육자로서의 책임은 팽개친 채 유치원을 돈 버는 창구로만 여긴 유치원들의 민 낯을 들여다보기도 창피하다.

지식의 상아탑인 대학이라고 다를 게 없다.

김현아 국회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2015~2017년 징계연도 기준 국공립대학 부패사건 발생현황'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총 24개의 대학에서 내·외부 감사 및 경찰 조사 등을 통해 적발된 부패사건은 218건, 부패금액은 45억8649만원이다.

충청권에서는 공주대, 충남대, 충북대, 한국교통대, 한국교원대, 한밭대 등 6개 대학에서 49건이 적발됐고, 부패금액은 4억7300여만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예비교사를 양성하는 한국교원대가 충청권 국립대 중 부패 사건이 19건으로 가장 많았다. 시대가 변해서인지 요즘 청춘들은 영웅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로 여긴다.

건물주가 꿈인 젊은 세대들에게 영웅의 존재는 자칫 헛된 희망을 안겨주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시점에 날아든 1980년대 영화 `영웅본색'으로 기성세대들의 영웅이었던 홍콩배우 저우룬파(주윤발)의 전 재산 8100억원 기부 소식은 반가웠다. 기성세대들에게 학창시절 한 번쯤 성냥개비를 입에 물게 했고 대낮에도 보잉 선글라스를 쓰게 만들었던 영웅의 본색이 바로 재산의 사회환원이었기 때문이다.

교육현장에서 교사와 유치원 원장을 영웅처럼 따랐던 아이들은 추한 이들의 본색을 수십 년 뒤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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