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방역
아름다운 방역
  • 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과장
  • 승인 2018.10.3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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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과장
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과장

 

가을은 깊어가고 날씨는 차가워진다. 지는 것들이 화려하다. 하루를 불태우고 넘어가는 석양의 노을이 그렇고, 낙엽이 지는 가을의 단풍들이 그렇다. 사람도 생을 마감할 때면 저토록 아름답게 불태울 수 있을까? 해가 지는 저녁 무렵이나 겨울의 길목에 서면 늘 이런 물음표를 달곤 한다.

지난 주말에 찾아간 청남대의 가을도 붉게 물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과 가을비, 그리고 천둥소리에 숲이 출렁이고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이 우수수 몸을 떨었다. 지나간 몇 해 동안 광풍처럼 불어 닥친 전염병에 숨을 떨구었던 동물들이 생각이 났다.

살기는 좋아졌는데 재난은 늘어난다. 사람들이 가설한 수많은 구조물들이 재난으로 되돌아온 이유가 될 것이다. 자연을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그 근본을 생각해보면 사람 중심의 편리성을 추구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떠나가면 오는 것이 있다. 가을이 떠나면 겨울이 오고, 따듯한 강남으로 떠난 새들의 자리엔 북방의 새들로 채워진다. 서로 오고 가는 교차점에 새로운 자리다툼이 일어나고 그러다 질서를 찾는 것이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철새가 전염병을 옮긴다고 하지만 철새만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물이 가축화된 연유는 자연에서 닥칠 위험을 사람이 대신 막아 주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므로 사람의 손길에서 자라는 가축이든 곡식이든 생을 마감할 때까지 건강하게 돌보아야 할 의무가 사람에게 있다고 본다. 비록 말은 못하지만 목부와 가축의 눈이 마주치면 그것이 서로의 약속인 것이다.

곧 겨울이다. 농부는 곡식을 거두어들이기에 바쁘고, 목부들은 월동준비가 한창이다. 목부들의 겨울은 근심이 많다. 무엇보다 전염병으로부터 생명을 지켜야 할 마음의 부담이 크다. 농부는 자연만 탓할 수는 없는 것이고, 동물은 주인을 믿고 겨울을 나게 될 것이다.

겨울을 앞두고 지난 몇 해 동안 전염병 때문에 피로 물들인 목장의 겨울을 돌이켜 본다.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바이러스이기에 자칫 예방활동을 소홀하기 쉽다.

철새의 터전인 강가나 논밭을 다녀올 때는 신발과 옷을 갈아입고 사람과 차량이 농장에 들어오는 기회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도 미덥지 못하므로 농장은 항상 깨끗하게 청소해야 하며, 소독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믿고 커 주는 내 가축에 잘 보이고, 불결한 환경과 밀폐 속에 면역력은 떨어지고 병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것이 방역이고 약속을 지키는 출발점이 아닐까 한다.

장편소설 대지(大地)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벅 여사가 1960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경주의 어느 시골에서 소달구지에 볏단을 싣고 가던 농부가 자신의 지게에도 볏단을 한가득 지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펄벅 여사는 농부가 지겟짐을 소달구지에 싣고 가면 편한 것을, 굳이 또 짊어지고 가는 연유가 무척 궁금했다. 펄벅 여사는 농부에게 그 이유를 묻자, 농부는 `소도 하루 종일 같이 일했는데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라고 대답했다 한다.

후에 펄벅은 한국농부의 모습이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고, 한국에서 본 어떤 유적지나 왕릉보다 이 감동의 현장을 목격한 하나만으로도 한국에 오기를 너무 잘했다고 기록했단다.

가축을 방역하는 원리도 바로 펄벅 여사가 보았던 이런 농부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가을을 보내는 화려한 단풍처럼, 마지막 황혼을 불태우는 저녁노을처럼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생을 보내는 것 또한 펄벅 여사가 보았던 농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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