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권력
꽃의 권력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8.10.28 1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흡사 이효석 『메밀꽃필 무렵』의 배경처럼 소금밭을 이룬 구절초 동산 기사를 접하고 대청호 주변 `열고개 구절초 올레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호랑이 출현이 잦아 열 사람 정도 모여야 함께 넘었다던 열 고개, 깊은숨을 몰아쉬며 구불거리는 오솔길을 아날로그로 오르는데 향수에 젖는다. 사춘기를 고되게 앓던 여고시절, 마음이 공허할 때면 집 뒤 산등성이로 난 오솔길을 거닐며 김소월의 `산유화'나 `초혼'을 음송하곤 했다.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꽃이 좋아/산에서/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꽃이 지네/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김소월, 「산유화」 전문



산유화를 음송하며 올라가는 길, 국어 시간에 `저만치'에 방점을 찍고 분석하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당시 우리는 저만치를 인간과 자연성을 분리하여 청산과의 거리로 이해한 것 같다. 피고 지고 끊임없이 생동하는 우주 만물의 존재들, 지금 피는 구절초는 지난해 그 꽃이 아니며 지금 눈앞에 나뒹구는 이 도토리도 지난해 그 도토리는 아니다. 그러고 보면 우주 공간은 늘 새로운 것들로 약동한다. 꽃피고 지는 모습에서 찰나를 살고 떠나는 인간의 일생이 느껴진다.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면 인생무상이지만 우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건강한 순환고리이다.

기지개로 가파른 호흡을 펼 때 왼쪽으로 자연인이 사는 듯한 움막 한 채가 보인다. 슬며시 들여다보니 살림들이 여기저기 나뒹군다. 텃밭을 일구는 부부의 모습이 평화로워 한참을 바라보다 돌아섰다. 바람결에 은은한 구절초향이 감겨오는 걸 보니 저만치에 목적지가 보인다. 도착하여 농원 주인이 갓 삶아 내놓은 알밤과 차를 마시며 움막 이야기를 물으니 건강을 위해 둥지를 튼 철학 교수 부부의 집이란다. 자연경관 좋고 공기 맛 신선하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꿀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좇아 산기슭에 오르니 넓은 구절초 동산이 펼쳐 있다. 신선이 어머니에게 준 약초라고 하여 선모초(仙母草)라고 불리는 구절초, 널따란 꽃 천지를 본 순간 전신이 홀린 듯 마비된다.

꽃 빛! 하얀 구도자! 어마어마한 흰빛 군락의 고고한 자태와 위엄, 그 소리 없이 내지르는 아름다운 함성에 발이 묶인다. 내 여기 이렇게 서 있어도 되는 일인가. 이들만의 향연에 괜한 발을 담가 죄짓는 건 아닌가. 여러 생각들이 파노라마를 일으킨다.

몇 해 전 졸업을 앞둔 제자들에게 식사를 마련하는 자리에서 한 여학생이 감사편지를 건네며 수줍게 전한 인사말이 떠오른다. “선생님, 좋은 시 많이 쓰시면서 늘 꽃길만 걸으세요.” 평소 텔레비전을 즐겨 보지 않아 `꽃길만 걸으라'는 유행어를 잘 모르던 터라 어린 제자의 덕담은 놀라운 충격이었다. 상징적인 그 꽃길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 꽃길을 걷는다. 한들거리며 물결 치는 구절초 꽃 사이를 거니는데 온 몸이 가볍다. 꽃이 풍기는 선한 권력에 자발적으로 손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인간이 잘났기로 얼마나 잘났으랴, 후미진 산기슭에서 존재 자체로 세상을 밝히는 이 꽃들만 하겠는가. 제 타고난 본래의 민낯으로 살지 못하고 포장과 인위적인 치장을 마쳐야만 당당히 서니 저만치에 둔 진짜 나로는 언제 살 것인가. 구절초 군락에서 잃어버린 민낯을 발견하고 돌아오는 길 가슴에도 하얀 잔별들이 지천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