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죽음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죽음
  • 정방훈 청원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 승인 2018.10.2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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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정방훈 청원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정방훈 청원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청주시 청원구청에서 노숙인 지원 업무를 한 지 이제 6개월 정도가 됐다. 업무 대장을 살펴보니 지난 6월에 수령한 노숙인 귀향 여비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 작년보다 많이 늘었구나….

지원 건수만 40여건. 상담 건수까지 하면 80여건 정도 될 것이다. 12월이 되기 전에 지난해보다 50% 정도 늘었다.

보통 노숙인들이 방문하면 본인의 의사를 여쭤 청주가 고향이 아닌 경우 연고지로 돌려보내거나 노숙인 관련 시설에 입소시키는데, 본인이 입소를 거부하면 하루 잠잘 수 있는 숙박시설로 연결을 시켜주게 된다.

업무를 하면서 가장 기분 좋은 경우는 자립할 의지가 있어 자활시설에 연결돼 꾸준히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추후에 들었을 때이고, 가장 안 좋은 경우는 노숙인 사망자가 발생했을 경우이다. 특히 여름과 겨울이 취약 시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의 대부분 이 두 계절에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행려병자가 발생하면 본인 확인을 위해 지문 조회를 하는데 의외로 지문 조회 시 지문 상태도 나쁘지 않은데 주민등록 미등록자로 나오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보통 생활이 힘든 분들은 주민등록이 돼 있어야 각종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그런 수혜를 마다할 만한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 궁금증만 더할 뿐 생전 고인의 지인을 인터뷰해보아도 이름과 생년월일 이상 정보를 알기가 힘들다. 지문으로 본인 확인이 안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유전자 검사를 한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는 극히 제한적인 방법이다. 고인을 찾기 위해 가족 등이 본인 유전자를 등록해 놓은 경우에만 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제 이 본인 확인 과정도 끝나면 화장을 하고 일간지에 공고하는 절차를 거치고 10년간 봉안하게 된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지만 망자도 본인이 이렇게 외롭게 갈 줄 알았을까? 영혼은 얼마나 슬퍼할까? 노숙인 사망자가 발생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한다.

다행히 지난 10월 1일부터 무연고 시신의 사망 등에 관한 지침이 개정돼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추모의식 등 장례서비스 지원이 가능하게 됐다.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사를 위해 관내 복지 기관, 주민자치협의회나 통·반장 등이 무연고 시신의 장례의식이나 조문객 응대, 시신 운구 등을 통해 외롭게 가신 영혼을 추모하고 간소하며 품위 있는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절차이다. 빈소를 설치하고, 추모 메시지를 작성하며 염습을 참관하고 종교의식에 따른 추모의식을 진행하고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으로 식사하는 등의 절차가 포함될 수 있다.

비록 제사 지내 드리는 피붙이는 없지만 가시는 발걸음에 슬픔을 조금 걷어 드릴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내가 맡고 있는 노숙인 및 노숙인 사망자 지원 업무도 처음에는 낯설고 무엇보다 힘들었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마지막까지 소외되고 힘들었던 이들의 고충을 해결해주고 마지막을 지켜 드릴 수 있다는 데 대해 크나큰 자부심을 느낀다. 요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처음에 노숙인이 왔을 때 건강이 안 좋은 분들은 체크해놨다가 나중에 안부라도 확인해보면 어떨까 혼자 생각해본다.

내년에는 청원구 노숙인 모두 자활에 성공했다는 소식도 많이 듣고 노숙인 사망자도 없는 행복한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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