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웨셀만 (Tom Wesselmann) -위대한 미국의 누드 #57
톰 웨셀만 (Tom Wesselmann) -위대한 미국의 누드 #57
  • 이상애 미술학 박사
  • 승인 2018.10.2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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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미술학 박사

 

미술사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누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100여 년 전에 제작된 마네의 <올랭피아>나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처럼 비스듬히 누워있는 부드러운 여성의 이미지일 것이다.

이는 서구 근대미술이 재현해온 여성의 이미지로서 남성들의 즐거움을 위하여 여성들을 에로틱한 이미지로 대상화한 것이다. 말하자면 여성의 누드가 성적으로 대상화되어 남성의 관음증적 시선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팝아티스트 톰 웨셀만은 이러한 유럽의 전통누드와는 달리 개방되고 적나한 성(性)을 회화적으로 유쾌하게 재현함으로써 1960년대 초 미국남성들이 누리던 성적 환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1960년대 미국은 경제적 호황과 함께 성(性)을 대하는 시각에 있어서도 현저한 변화를 맞이한다. `누워있는 여성 누드'라는 유럽의 전통 누드를 패러디한 TV광고와, 각종 외설문학이 붐을 이루었고, 이에 힘입어 남성 전용잡지인 『플레이보이』지도 출간되었다. 뿐만 아니라 피임약의 개발에 따른 상용화와 킨제이 보고서는 성의 개방화 물결을 가속화 시켰으며, 이러한 사회의 분위기는 미국인들이 성을 매우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1961년 <누드 #1>로 시작하여 1973년 <누드 #100>으로 완료된 웨셀만의 누드연작은 이러한 성(性) 방임주의의 사회 속에서 탄생되었다.

<위대한 미국의 누드 #57>은 마치 선탠 후 남은 수영복의 흔적처럼 중요부위가 하이라이트로 강조되어 있다. 특히 발기된 유두와 치모가 에로틱하게 강조되어 있고, 나머지 부분은 과감히 생략되어 있다. 이렇게 생략을 통해 생략되지 않은 부분을 강조한 것은 성적인 은밀함에 대한 메타포로서 표현한 그의 의도로 여겨진다. 이러한 암시와 은유는 관객으로 하여금 생략된 여백을 상상력으로 그려나가며 호흡을 같이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얼굴 없는 누드는 현대인의 익명성을 보장해주는 웨셀만의 전매특허와 같은 것이다. 여성의 얼굴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채 미소 띤 입술만 남아 있어 눈이 없는 누드는 볼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어 있다. 때문에 앞을 못 보는 누드는 시각을 전적으로 관음증적 남성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그의 누드연작은 계속해서 남성의 시선에 우선권을 부여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이로부터 벗어나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이는 자신의 여인을 작품에 표현함으로써 자신들의 내밀한 사생활의 관계가 대중들의 분석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웨셀만은 당시 미국의 성 개방문화에 대한 풍자와 자신의 성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성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 공적 · 사적인 문맥들을 한데 엮어 가시화한 것이다. 그리하여 100여 년 전 유럽에 우울하게 누워 있던 누드가 100년 후 밝고 경쾌한 모습으로 미국에 누워 미국의 누드로 변모한 것이다.

비록 외설이냐 순수냐, 고급예술이냐 저급예술이냐 라는 간극 사이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겼지만, 그의 <위대한 미국의 누드>시리즈는 당시 미국의 성 개방 문화에 따른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에 대한 완벽한 풍자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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