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의 가을걷이
한 평의 가을걷이
  • 박윤희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 승인 2018.10.25 1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박윤희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박윤희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제법 가을 날씨답게 한낮의 햇볕만이 따갑게 느껴진다. 뒷마당에 고춧대를 뽑았다. 여름 내내 무공해 고추를 따 먹고 이젠 끝물 고추만 남아있었는데 오늘에서야 하게 되었다.

아파트에 살 때에는 마당이 있는 집에 대한 동경이나 그리움이 있다. 9년 전 단독으로 이사 와서 집 둘레로는 꽃밭을 만들어 꽃을 심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양보했다. 뒤편에 한 평 남짓의 땅이 있기는 했지만, 각종 쓰레기와 오물로 지저분한 곳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곳에 상추와 고추를 심었다. 상추씨를 뿌리려 했으나 시기를 놓쳐 모종 한 판에 3000원을 주고 사다 심었다. 상추는 하루가 다르게 잘 자랐다. 그 모습을 보며 너무 흐뭇했다. 한 평밖에 되지 않는 땅에 뭐 그리 할 일이 많다고 틈만 나면 밭에 쭈그리고 앉아 손톱만큼 자란 풀까지 모조리 뽑아 주었다.

상추를 첫 번째 뜯던 날. 너무 기쁜 나머지 여기저기 자랑을 하느라고 입이 마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시큰둥했다.

“이것 좀 봐. 너무 예쁘게 잘 자랐지? 이거 내가 직접 기른 상추야. 무공해 상추.” 나는 수다스러울 정도로 자랑했다. 그 후 여러 번 상추를 뜯어 먹다 보니 농사를 짓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고추 모를 얻어 가장자리에 심었다. 고추가 열릴 때마다 우리의 행복의 열매가 열리듯 고추는 점점 주렁주렁 달렸다. 대여섯 포기 고추 농사를 짓고 여기저기 인심을 쓰느라 바빴다. 한 평의 땅에서 수백 배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남들은 그까짓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땅이 되었다.

고춧대 사이에 대여섯 포기의 배추 모종을 옮겨 심어 심한 가뭄에 거의 말라죽고 세 포기만이 자리를 잡아 김장을 해도 될 만큼 잘 자라주었다. 고춧대를 모두 뽑고 흙을 잘 고르며 세 포기의 배추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그 빈자리도 이젠 희망이라는 말로 가득 채워 놓고 보니 가슴 뿌듯했다. 내년에 이곳에 또다시 행복의 씨앗을 심어 한 평의 땅에서 만 배의 기쁨을 수확하리라. 우리 가족의 희망을 담고 한 평의 땅은 이젠 깊은 겨울잠에 빠져들겠지?

행복이란 작은 곳에서 더 느낄 수 있고 소박한 가운데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보물인 듯싶다. 어린 시절 소풍 가서 했던 보물찾기처럼 우리 주변에 숨어 있을 행복의 보물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