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10.2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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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결코 멀지 않은 과거, 컴퓨터가 일상화되고 인공지능 연구가 막 시작할 무렵.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 자질구레하고 하찮은 일들은 컴퓨터가 다 하게 될 것이고 인간은 정말 고차원적이고 창조적인 일만 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인간은 정말 더 인간다워질 것이라고.

그런데 이런 나의 예상은 십여 년을 채 견디지 못해서 무너지고 말았다. 얼마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단지 이세돌이라는 바둑기사가 졌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서양 바둑인 체스의 세계 고수도 오래전에 컴퓨터에 졌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렇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때는 컴퓨터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해서 착점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능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 인간보다 똑똑해서 이긴 것은 아니었다. 비록 인간이 지기는 했지만 별로 큰 충격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알파고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해서 한 것이 아니었다.

체스와는 달리 바둑에서 경우의 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해서 아무리 빠른 컴퓨터라고 해도 그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하려면 수천 년, 아니 수만 년이 더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해서 한 것이 아니다. `생각'을 해서 인간을 이긴 것이다.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생각'을 컴퓨터가 했고, 그것도 인간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한 것이다. 소위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기법인데, 마치 사람이 모르는 것을 배워나가는 것과 유사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을 인간의 두뇌가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동일하지 않더라도 인간보다 더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분명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세돌과 알파고의 시합은 아마도 인류사적 중요성을 갖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기계가 계산할 수는 있지만 판단을 할 수는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기계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일을 컴퓨터가 할 것이라고는 몇몇 뛰어난 선각자 외에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현실이 되었다. 앞으로 모든 어려운 판단은 인공지능에 물어봐야 할지도 모른다. 회사가 어떤 경영방법을 택해야 수익이 극대화될 수 있는지, 누구를 승진시키고 누구를 해고해야 할지, 전쟁에서 어떤 작전을 쓰는 것이 가장 이길 확률이 높은지, 내가 어떤 직업을 택해야 앞으로 잘 살 수 있는지, 독도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인공지능에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단순 작업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고차 정신 영역은 물론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도 인간을 앞질렀다. 이미 컴퓨터가 작곡하고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컴퓨터가 만든 작품들이 인간들의 작품에 비해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창의적'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단순 작업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 의사결정을 인공지능에게 맡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인공지능에 기대어 먹고 자고 놀기만 하면 될까?

물론 아직은 컴퓨터보다 인간이 잘하는 일이 많다. 진단 로봇이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진단을 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의사가 필요한 세상이다. 인터넷에 엄청난 정보가 있지만 아직은 학교의 선생님이 필요하다. 회사 경영을 위한 자문을 인공지능에게 물어보기는 하지만 아직도 결정은 사장이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상태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이 하던 일을 인간보다 더 잘하게 될 때, 인간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때도 인간은 행복할까? 그때도 인간은 여전히 존엄한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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