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울리는 고용세습
취준생 울리는 고용세습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8.10.2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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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금란 취재3팀(부장)
김금란 취재3팀(부장)

 

초등학교 운동회날 어린이들을 긴장시키는 경기는 달리기이다. 이 경기에선 먼저 출발을 해도, 출발선 앞에 발을 내밀고 있어도 부정 출발로 간주한다. 같은 출발선에서 같은 총소리를 듣고 내달려 결승선에 도착하면 등수에 맞춰 손등에 `참 잘했어요'를 찍어준다.

잘 사는 집안 자녀라고, 교직원 자녀라고 해서 출발선이 다르지 않다.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있는 힘껏 달린다. 중간에 넘어져도 불만은 없다. 이유는 출발선이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정감사가 시작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공기업 직원의 고용세습은 얘기가 다르다.

고용세습 수혜자는 공정한 채용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실력보다는 인맥의 특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졸업까지 미루고 밤새 책과 씨름하는 취준생들에게 이보다 더한 허탈감이 어디 있겠는가.

서울시는 23일 감사원에 `고용세습'논란이 불거진 서울교통공사 감사를 청구했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3월 1일 1285명을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 가운데 108명이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친·인척으로 확인되면서 `고용세습'논란이 일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유민봉 의원이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정규직 전환자의 친인척 재직 현황'에 따르면 이들 108명 중 자녀가 31명으로 가장 많았다. 형제·남매는 22명, 삼촌은 15명, 배우자 12명으로 집계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서울시 국정감사에 출석해 “채용에서 불공정과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감사원에 정식 감사를 요청해 의혹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에 이어 한전KPS는 정규직으로 전환한 240명 중 4.6%인 11명이, 한국가스공사는 정규직 전환 대상 1203명 중 2.1%인 25명이 가족이나 친인척으로 드러났다.

고용세습이 이뤄진 공기업은 취준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다.

정년이 보장되는 데다 높은 임금까지 받기 때문에 취준생들이 재수, 삼수를 감수하고 입사를 희망한다.

한국고용정보원과 청년희망재단이 발표한 청년 삶의 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준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곳 1위는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37.9%)이었다. 이어 중앙부처·지자체 등 공무원(23.2%), 중소기업(17.9%) 순이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공시된 자료를 보면 2017년 35개 공기업(시장형+준시장형)의 2017년 평균 급여액이 가장 높은 곳은 한국전력기술로 9227만원이었다. 이어 한국서부발전 9150여만원, 한국마사회가 8979만원 순이었다.

기업체에서 기술전문가로 일해야 할 마이스터고 학생들도 공기업에 매달리기는 마찬가지다.

마이스터고인 충북에너지고는 2015~2016학년도의 경우 92%를 넘는 취업률을 기록했지만 2017학년도는 20%가량 추락한 75.68%에 불과했다. 이유는 학생들이 안정적인 공기업 입사를 위해 기업체 취업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비정규직들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겠다며 추진한 정규직 전환 정책이 제 자식만 챙기는 고용세습으로 악용돼 또 하나의 적폐를 양산했다.

돈 많고 배경 좋은 금수저 집안의 자녀들은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고 말하는 데 흙수저들은 취직할 기회조차 빼앗겨야 하는 현실 앞에 또다시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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