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문턱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8.10.2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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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자 신산했던 여름이 무너진다. 연일 40도를 웃돌아 에어컨 바람에 뜨거운 열기를 식히던 기억도, 긴 가뭄으로 목말라하던 대지를 바라보던 안타까움도 서서히 잊혀간다. 목마름을 잘 견딘 들녘은 알곡들을 조롱조롱 매달고 가슴 태운 농부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을 드리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문턱이 아주 높았다. 어머니는 문턱을 넘을 때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키가 작은 나는 마루와 안방 사이에 있는 문턱을 넘으려면 발을 높이 들어야 했고, 어머니가 부엌에서 무거운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실 때면 걸려 넘어지실까 늘 염려가 되었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대부분 농촌의 집엔 마루와 방 사이에 높은 문턱이 있었다. 먹거리가 귀했던 보릿고개를 지나 차츰 경제가 좋아지면서 집의 형태도 생활이 편리한 아파트로 바뀌었다. 문턱이 낮아져 방을 드나들거나 짐을 옮길 때에 아주 쉬워졌다. 이제는 아예 문턱을 없애서 방을 드나들 때에 걸려 넘어질 염려도 없고 가구나 짐을 쉽게 옮길 수 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여러 차례의 문턱을 넘는다. 불편하던 집의 문턱은 없어졌지만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문턱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경우는 처지에 따라 다를 것이고 넘는 방법이나 노력 또한 다르지만 높던, 낮던 문턱을 넘어서야 한다.

경제가 좋아지고 문화수준이 높아지면서 대부분 사람들은 장래의 삶의 질이 이것에 의해 판가름난다고 생각한다. 대학이라는 문턱이다. 대학의 문턱을 넘기 위해 12년의 세월을 공부 속에 자신을 가둔다. 본인뿐 아니라 부모까지도 이 문턱을 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투자를 한다. 이 문턱을 넘지 못해 고민하다 생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희생을 낳기도 하는 인생의 장애물이 될 때도 있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의 문턱이 높아 많은 이들이 힘들어한다. 일자리가 없어 실업자 수와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이후에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백여 개가 넘는 취업원서를 써도 붙을까 말까 하다는 취업준비생도 있다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욕과 혈기 넘치는 그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일자리가 시급하다.

또한, 결혼의 문턱이 너무 높아 젊은이들의 무지갯빛 인생 설계에 검은 구름이 드리운다. 결혼 적령기의 미혼 남녀들이 미친 듯 치솟는 집값과 힘든 육아문제로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가적으로 인구 감소의 위기에 처한 심각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통일은 넘을 수 없는 높은 문턱이었다. 핵으로 위협하던 북의 정상과 우리나라의 정상이 만나 악수를 하고 오찬을 함께 하는 등 화해의 움직임이 보인다. 높은 통일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토록 넘기 어려운 문턱을 쉽게 넘으려 시험지를 유출하여 자녀의 학력을 위조한 빗나간 부성애가 공분을 일으키고, 인맥을 동원하여 일자리를 꿰찬 일부 공기업에 대한 분노가 세상을 들썩이고 있다.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몰지각한 사람들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더 이상의 이기심을 잠재우길 바란다. 풍요로운 가을, 인생의 힘든 문턱을 넘기 위해 고뇌하고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알곡의 소득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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