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꽃
노을 꽃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8.10.23 1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밤새 울어대던 바다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엊저녁 읽다 잠든 책 구절 때문일까. 나는 꿈속에서 섧게 울었다. 누군가 해변을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흐느끼면서.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같이 울어 주었다. 그 사내가 아킬레우스였을까.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는 진정으로 아끼는 친구 파토르클로스를 전장에서 잃고 그가 생각나는 밤이면 해변을 정처 없이 거닐곤 하였다고 했다. 그토록 그의 가슴을 헤집는 슬픔은 불꽃이 타오르듯 동이 트는 아침까지도 아킬레우스를 그 바다와 해변이 놓아 주질 않았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그것도 서해를 좋아한다. 그 이유를 말하라 하면 노을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바다가 태양을 거두어가는 그 순간, 바다는 온통 핏빛으로 물들곤 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숙명이라지만 어찌 그리도 무거운 형벌을 내리는 것일까. 그래서일까.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이며 스러지는 태양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속의 답답함이 사그라지곤 한다. 내 안의 무엇이 바다로 이끄는지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마음이 무거울 때면 서해로 내달린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마음을 푸는 방법이 있다. 친구들과 왁자하게 떠들거나 크게 소리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또는 영화를 보거나 한다. 나는 책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키곤 한다. 거기다 자연과 함께라면 더 좋다.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쓸쓸할 때, 기분이 좋을 때도 책을 꺼내 본다. 여행길에도 빠지지 않는 것이 책이다. 다독보다는 정독을 즐기는 편이다. 이번 여행길에도 몇 권의 책을 들고 왔다. 이번 여행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을 읽으려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알아야 한다. 다행히도 나는 두 권의 책을 오래전에 읽어 놓았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시인이다.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의 저자 애덤 니컬슨은 시인 호메로스의 족적을 찾아 바다로 나섰다. 그는 범선을 타고 거친 바다를 항해한다. 그곳에서 수천 년 전의 `오디세우스'를 만나고, 너무 잔인하여 무섭게만 느껴졌던 `일리아스'의 인물들을 호메로스로 인해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로 인해 무한히 확장되는 정신세계를 경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며칠 전 일어난 잔인한 살인으로 우리 사회가 시끄럽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PC방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범인은 자신에게 함부로 대한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칼부림을 했다. 아르바이트생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그런데 그 살인자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심신미약 상태라고 한다. 이번에도 법은 어떤 처벌을 내릴지 궁금하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 마음이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람의 생명을 터부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면죄부도 적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이 나라의 법이 공정하게 실현되기를 바란다.

증오와 혐오, 복수심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인간이 지닌 본성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 인간이 지고 가야 할 굴레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부조리한 현실에서 올바른 가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성실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과거의 인물 아킬레우스,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온갖 책략을 동원해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현재와 미래의 상징 오디세우스. 과연 누구의 삶이 올바른 것일까. 그것은 내가 노을빛을 핏빛으로 보는 것이 옳은지, 꽃빛으로 보는 것이 옳은지 모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호메로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