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서원
화양서원
  • 강민식 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학예실장
  • 승인 2018.10.2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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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 땅과 사람들
강민식 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학예실장
강민식 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학예실장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노론이 집권한 후 우암의 생전 벼슬을 회복하고 각처에서 그를 제사지내는 서원 건립이 붐을 이뤘다. 청천으로 이장하기 전 묘소가 있던 수원에 매곡서원, 사약을 받은 정읍에 고암서원, 충주 누암서원이 이해 세워졌다. 이듬해 역시 유배갔던 덕원 용진서원, 그리고 만년 20여 년을 보낸 화양동에 서원이 들어섰다. 그리고 다음해 서원 건립을 마무리하고 제향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 인물을 모신 서원이 거듭 세워지는 것에 대해 예조의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왕이 직접 나서서 다른 인물과 비교할 바 아니며 화양동 또한 그 특별함을 밝히며 순조롭게 서원이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우암이 화양동의 자연을 사랑하고 집을 지어 학문을 닦은 것을 주자의 무이정사(武夷精舍)와 같다 하였다. 이해 마침 문정(文正)이라 시호가 내려졌는데, 다른 경우 반드시 공훈을 밝힌 시장(諡狀)이 있어야 했으나 우암만은 그 과정마저 생략하였다. 특별함의 연속이었으니 이때 기존 서원에 배향된 것은 부지기수다.

처음 서원을 세운 곳은 화양동 바깥 만경대(萬景臺) 밑이었다. 이곳은 옥화구곡의 제1곡이기도 한데, 아직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지키기 쉬운 곳을 택했으나 마을이 피폐해지면서 이전을 고려하였다. 만경대에 세운 서원은 1710년 만동묘(萬東廟) 아래로 옮겼다. 문인 권상하(1641~1721)는 우암과 화양계곡과의 인연, 황제 어필이 있는 곳이란 이유를 들어 추진하였다. 만동묘는 1704년(숙종 30) 명 황제, 신종과 의종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니 그 아래 옮겨 세운 것은 그가 평생의 신념으로 내세웠던 대명의리를 죽어서도 실천한 셈이다. 이후 1716년(숙종 42) 왕이 화양서원이라 친히 써서 글을 내리니 권위가 더해졌다. 또 서원 앞에는 사액 될 때 윤봉구(1683~1767)가 글을 써 함께 세운 묘정비가 있어 화양서원의 내력을 살필 수 있다.

서원 아래 효종의 기일마다 통곡했다는 읍궁암이 있고, 북쪽으로 계곡 건너에 암서재가 있다. 우암이 처음 운영담 위에 `화양계당(華陽溪堂)'이란 초당을 짓고 머물렀는데, 다시 김사담 위로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서원 몇 보 밖에 서재가 있어 서책 등을 보관하였다고 하니 아마도 우암은 화양동에서 서원 터 가까이에 머물렀던 듯히다.

화양동이 대명의리의 상징처럼 여길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우암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사실 외에도 읍궁암이 갖는 상징성을 더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민정중(1628~1692)이 연경에서 숭정황제의 어필, 비례부동 네 글자를 구해와 첨성대 아래 바위에 새기면서부터이다. 그리고 동쪽 사찰의 이름을 <논어>의 `환호문장(煥乎文章)'에서 따와 환장암으로 바꾼 후 그 글을 보관케 하였다. 숭정황제의 글은 1673년(현종 14) 김수항壽恒도 구해온 바 있다.

화양서원은 치열한 당쟁 속에서도 훼철을 면할 수 있었는데, 소론이 집권한 경종 때마저도 무사할 수 있었다. 또 영조 때 충청병사 휘하의 비장이 화양서원에서 행패를 부린 일이 있었는데, 병사까지 연대 처벌한 것을 보면 그 권위와 위상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노론 일당의 독재가 유지되면서 화양서원은 `노론의 소굴'로 인식되었다. 흥선대원군의 굴욕이 전할 만큼 화양서원은 당쟁의 적폐로 지적되어 왔다. 지금껏 전하는 `화양묵패'에 세원을 확보하려는 수령의 노력을 관의 침탈로 규정하고, 무단히 제수를 거두던 복주촌(福酒村)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다.

하지만 결국 화양서원도 1870년(고종 7) 훼철을 면치 못했다. 오늘날 복원한 화양서원은 과거의 영화를 기억하기에는 오히려 초라할 정도이다. 원래 3칸 사우와 익랑을 갖춘 정문, 그리고 10칸 강당을 포함하여 모두 57칸의 부속 건물을 두고 있었으니 23칸의 만동묘보다도 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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