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解産) 한 밤나무
해산(解産) 한 밤나무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18.10.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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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나뭇잎들이 물들기 시작하고 들에 곡식들이 영글어 가며 밤, 대추, 감, 사과 등 과일도 탐스럽게 익어간다. 모처럼 쉬는 날이라 남편과 가을 산행이라도 갈까 하다가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어르신들 체육대회에 참석하시느라 읍내에 가셔서 안 계셨다. 어머니는 밭일하시며 평생을 살아오셨다. 이제 농사는 자식들 성화에 많이 내려놓으셨지만 마당가 자투리땅에 고추, 마늘, 배추를 심으셔서 가꾸고 계신다. 오로지 자식들에게 김장거리라도 주시고 싶은 일념에서이다.

남편과 밤을 주우러 밤나무 밑에 들었다. 야트막한 산 밑에 있는 밤나무가 있는 밭이다. 아버님이 계실 때는 두 분이 함께 다니시니 걱정이 덜되었는데 지금은 어머니 혼자 밤을 거두러 다니시니 자식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편은 누가 주워 가더라도 내버려두시라 하지만, 어머니는 `어찌 그러느냐'하시며 걸음마저 불편한 몸으로 밤을 주워 나르신다. 칠남매 자식들 기르시며 배불리 먹이시려고 곡식 한 톨, 과일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고 살아오신 분이시니 밤을 그냥 버려두기는 허용될 리가 없다.

밤나무 밑에는 잘 영글어 반들반들 윤기가 나는 알밤들이 제법 많이 떨어져 있었다. 밤은 맛도 좋지만 알밤을 주울 때 소중한 무엇을 손에 넣은 것처럼 뿌듯함이 있어 밤만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는 밤나무가 귀했는데 옆집 뒤 곁에 밤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푸른 밤송이가 커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가을이 되어 한 알 두 알밤이 떨어지면 나는 동생을 업고 밤나무 밑에 종종 갔다. 알밤 두세 개를 주워 오며 옆집 아주머니께 양심에 가책을 느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한참 밤을 줍다가 나무 위를 보니 알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막대기로 밤송이를 건드려 툭 떨어진 밤송이를 벌리자 잘 익은 밤이 손에 쥐어졌다. 푸른색 밤송이 하나가 옆에 있는 걸 보니 아마도 내가 덜 익은 송이마저 떨어뜨린 모양이다. 밤송이가 좀체 벌어지지 않아 두 발과 막대기로 벌려 풋밤을 꺼내다 보니 손이 따끔했다. 가시로 둘러싸인 밤송이가 장갑을 뚫고 어설픈 내 손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아직 덜 익은 풋밤을 더 보듬고 보호하려는 밤송이를 억지로 떼어놓은 격이다.

밤송이는 온통 가시투성이로 밤을 보호하고 있다. 식물도 나름 자신들의 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만의 방어망을 가지고 있다. 은행은 고약한 냄새와 독성을 품고 있는가 하면 호두나 잣 같은 견과류는 딱딱한 껍질로 알맹이를 보호하고 있다. 밤이 덜 여물었다 싶으면 밤송이는 아람이 되지 않고 토실토실 영글어야 스스로 송이를 벌려 밤알이 저절로 떨어져 나오게 한다. 수많은 가시로 밤을 지켜낸 밤송이도 알밤을 모두 떨어뜨리고 나면, 더 이상 미련 없이 시나브로 낙하하여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긴다.

밤나무가 해산을 마친 산모처럼 후줄근하다. 성근 잎 사이사이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걸렸다. 지독한 가뭄과 폭염, 태풍마저 이겨내고 토실토실하게 밤을 영글게 하여 세상에 내 놓았다. 다산(多産)을 마친 밤나무 위로 칠 남매를 위한 수고로움을 놓지 않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져 얼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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