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급수의 비밀
기하급수의 비밀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10.18 2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칼럼 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어떤 구두쇠가 있었다. 장난기 많은 한 사람이 이 구두쇠를 골려줄 묘안을 생각해 냈다. 바둑판을 내 놓고 그 구두쇠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내가 바둑돌을 첫 번째 칸에 놓으면, 당신이 쌀 한 톨을 나에게 주고 나는 쌀 한 가마니를 당신에게 주겠소. 그리고 두 번째 칸에 놓으면 당신은 나에게 쌀 두 톨을 주고 나는 다시 쌀 한 가마니를 주겠소, 다음은 4톨, 그다음은 8톨, 이렇게 칸을 채울 때마다 제곱수로 쌀을 나에게 주고 나는 매번 쌀 한 가마니씩 당신에게 주겠소. 다만 이 바둑판의 칸을 다 채울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이렇게 제안을 했더니 구두쇠가 잠시 생각한다. “가만 있자. 쌀 한 가마니에 들어 있는 쌀은 어림잡아도 수십만 톨 아니면 수백만 톨이 될 텐데 이까짓 바둑판 다 채우는데 쌀 한 가마니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면 이보다 수지맞는 장사가 어디 있어?” 이렇게 생각한 구두쇠는 얼씨구나 하고 내기에 응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처음에는 한 번에 한 가마니씩 쌀가마니가 쌓이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횟수가 증가해 가다 보니 바둑판 한 줄(19칸)을 채우기도 전에 내야 할 쌀은 한 가마니가 되고, 다음은 두 가마니, 그 다음은 4 가마니, 이렇게 받은 쌀을 다 돌려주고도 모자라서 구두쇠가 망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것은 기하급수가 얼마나 대단한 위력이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기하급수는 간단히 말하면 새끼가 새끼 치는 방식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인구 증가가 그 좋은 예다. 경제학자 맬더스도 기하급수의 의미를 알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하면서 인구증가의 위험성을 강조한 바 있다.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도 새끼 치므로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한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전도 기하급수적이다.

기하급수를 보자. 1 2 4 8 16 32 64 128 356 614 . . . 언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숫자는 아닌가? 지금은 잊어버렸을지 모르지만 IBM 컴퓨터가 나올 때, 처음에는 8비트 컴퓨터가 나왔고, 그다음은 16비트, 다음은 64비트, 이렇게 발전해 왔다. 새로운 것이 나올 때마다 성능은 엄청나게 달라졌고 사람들은 감탄했다. 지금은 기가비트, 테라비트 시대가 되었다. 이것도 기하급수적인 증가다.

그런데 이 급수를 잘 음미해 보자. 4는 그 앞에 있는 모든 수를 합한 것(1+2) 보다 더 크고, 8은 다시 그 앞에 있는 모든 수의 합(1+2+4)보다 더 크고, 16도 그 앞의 모든 수의 합(1+2+4+8)보다 더 크다. 이렇게 모든 수는 그 앞의 모든 수를 합한 것보다 더 크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증가의 주기마다 새로 증가하는 양은 그 앞의 모든 증가를 합한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지식이 10년 주기로 두 배가 된다면, 앞으로 10년 동안 새로 생기는 지식이 지금까지 전 인류가 수만 년 동안 축적한 지식보다 더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전자 황창규 회장은 반도체 메모리 증가가 매년 두 배씩 증가한다는 소위 `황의 법칙'을 제창했고, 128기가바이트(GB)가 될 때까지 이 법칙은 깨지지 않았다.

현대는 급변하는 사회다. 문제는 이 급변이 산술급수적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기술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진다. 앞으로 10년 동안 인류가 경험할 변화는 구석기 시대로부터 지금까지의 변화 전부를 능가할 것이다. 휴대전화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상상이 가는가? 내비게이션이 없이 어떻게 길을 찾아갔는지 상상이 가는가? 자율주행차가 막 나오고 있다. 얼마 안 가서, 지금처럼 운전대가 있는 차를 타고 졸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여행을 다녔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날이 올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몸과 마음은 석기시대에 적합하게 진화했다는 점이다. 석기시대의 육체와 정신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이 급변하는 시대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