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게와 김치찌개
김치찌게와 김치찌개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8.10.1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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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강대헌 에세이스트
강대헌 에세이스트

 

전통시장을 구경하다가 `복은 땅콩 3000'이라고 쓴 손글씨 가격표를 보았습니다. `볶은'이란 말을 잘못 쓴 것이 아니라면, “복은 땅콩 3000개를 먹으면 들어온다”라는 뜻도 되겠더군요.

올해 572돌이나 되는 한글날과 맞물려서는 머릿속이 뒤엉키고 말았습니다. 우리말을 일상에서 어떻게 쓰고 있느냐의 측면에선 아직도 되돌아보고 바로 잡을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더구나 `한글의 탄생'이란 역작을 쓴 노마 히데키(野間秀樹)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읽고는 “마치 공기의 진동에 불과했던 소리가 문자로 바뀌는 순간을 엿보는 감동이었다”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는데 말이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언어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성곤 아나운서가 SNS에 올렸던 `오남용을 주의해야 하는 낱말들2'라는 제목의 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되게'라는 낱말이 범람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걱정이 들어있기도 했는데, 아래 7개의 예문들을 그대로 옮겨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입으니 되게 잘 어울리는구나.”, “우리 사회에는 되게 다양한 계층이 있습니다.”, “친구 아버지 영정을 보고 나니 되게 슬펐습니다.”, “직원들은 이번 조직 개편에 되게 기대가 큽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 되게 당황했을 거야.”, “연습을 열심히 하더니 이제는 되게 잘하는구나.”, “막상 가보니 듣던 것과는 분위기가 되게 달랐습니다.”

위의 예문들은 말맛이 달라지고 서투른 화법이라고 볼 수 있겠다는 겁니다. `되게'라는 낱말 대신에 비슷한 뜻을 지닌 다른 부사(副詞)로 가려 쓰면 어떻게 바뀔까요?

“그렇게 입으니 썩 잘 어울리는구나.”, “우리 사회에는 매우 다양한 계층이 있습니다.”, “친구 아버지 영정을 보고 나니 무척 슬펐습니다.”, “직원들은 이번 조직 개편에 자못 기대가 큽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 퍽 당황했을 거야.”, ”연습을 열심히 하더니 이제는 제법 잘하는구나.”, “막상 가보니 듣던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일본식 영어 찌꺼기인 `파이팅(화이팅)'이란 말을 몰아내야만 우리말이 살 것이란 그의 주장에 대해서도 공감합니다. 대안으로는 `아자'와 `아리아리'와 `으라랏차'와 같은 말들을 활용하자는 의견들이 있더군요.

누가 무슨 말을 꺼내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박'아니면 `헐'이란 말로 응답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세태도 걱정스럽게 여겨집니다. 대신 쓸 수 있는 맛깔나는 다른 말들도 있는데 말이죠. 자꾸 쓰지 않으면 잊혀지고 마는 언어의 운명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겁니다.

순우리말에 대한 관심의 폭도 넓혀가야겠지요. 말이 나온 김에 일곱 개만이라도 짚어보고 싶습니다. 그루잠(깨었다가 다시 든 잠), 나비잠(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 느루(한꺼번에 몰아치지 않고 길게 늘여서), 달보드레하다(입에 당길 정도로 조금 달다), 띠앗(형제나 자매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 손갓(눈이 부시지 않게 하거나 멀리 보기 위해 손을 펴서 이마에 대는 것), 아람(밤이나 상수리 따위가 충분히 익어서 저절로 떨어질 정도가 된 상태), 온새미로(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긴 그대로).

식당 간판이나 차림표에 아직까지도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찌게'라는 말을 보는 것도 마뜩잖군요. 모음 `ㅐ'와 `ㅔ'가 물론 헷갈리긴 하지만, 고유명사(固有名詞)를 나타낼 땐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꽃게탕'을 먹으러 들어가서 `꽃개탕'이란 말을 보게 되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어디서나 `김치찌게'가 아니라 `김치찌개'를 먹고 싶군요.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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