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경 - 법정 4
어린 왕자경 - 법정 4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10.1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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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사람은 두 종류다.'내가 이렇게 이야기할 때 학생들은 긴장한다. 그때 나는 말한다. `번지점프를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그때 웃음이 터진다. 그리고는 성선설과 성악설로 넘어가거나, 깨달음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말은 안 된다. 성선과 성악은 사람의 본성은 한 종류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선을 주장하는 사람과 성악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야 비로소 두 종류가 된다. 결론은, `성선을 주장하면 학교를 짓고, 성악을 주장하면 감옥을 짓는다.'이다. 여러분은 무엇을 우선시하겠냐고, 인간성이라는 오래된 문제에 매달리기보다는 그것의 사회적 영향을 생각하라고.

깨달음도 그렇다. 선가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백 척이나 되는 장대 위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것'(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이다. 무섭다. 그러나 앞으로 나갈 때(비록 몇십 미터 아래로 떨어질지라도) 깨달음을 얻는다.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낭떠러지에서 건너편으로 뛰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다. 목숨을 걸고 뛰어볼 일이라는 이야기다.

당연, 나는 번지점프를 해본 사람이다. 그래서 자랑하려고 그렇게 말한다. 번지점프의 발상지에서 나는 웃통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내렸다. 가장 무서워 보려고. 발끝까지 잠기는 선택이었다(to the feet). 공포영화를 볼 때 옷을 홀딱 벗고 보라는 조언도 있지 않은가.

성미 빡빡한 법정 스님도 사람을 그렇게 나눈단다.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를 말한다. 법정은 자기에게 어린 왕자를 처음으로 소개한 벗은 이것만으로도 자신이 한평생 고마워해야 할 사람으로 여긴다. 읽을 때마다 그 사람을 떠올려 고마워하니 벗도 영광이다. 법정은 어린 왕자를 하나의 운명으로 여긴다. 그리고 벗은 만남을 이어준 고마운 이다. 뭐라고 할까, 선녀와의 인연을 엮어준 고마운 사슴으로 생각한다고나 할까.

법정은 어린 왕자 때문에 만나게 된 사람도 있단다. 프랑스 신부와 뉴질랜드 노처녀도 어린 왕자 때문에 가까워졌단다. 법정의 표현대로라면, `너를 읽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내 신뢰감과 친화력을 느끼게 된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그렇다. 반대로 `너를 읽고도 별 감흥이 없어 하는 사람'은 자기와 치수가 잘 맞지 않는 사람이란다. 자신과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아는 방도가 바로 어린 왕자를 읽고 난 다음의 반응으로 짐작할 수 있단다. 그에게 어린 왕자는 곧 사람의 폭을 재는 자라고 고백한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했는데, 법정에게 `어린 왕자는 사람을 재는 척도'인 것이다.

법정은 세게 말한다. 자신에게 지묵(紙墨)으로 된 한두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화엄경'과 함께 선뜻 `너'를 고르겠단다. `법구경'과 `선가귀감'은 물론이고 `불타 석가모니'라는 와타나베 쇼오코의 부처 전기도 번역한 법정이지만, 어린 왕자를 `화염경'의 반열에 올리고 있다니! 법정에게 어린 왕자는 하나의 경전이라고 해도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어린 왕자는 오직 하나뿐인 꽃인 줄 알았다가 똑같이 생긴 장미꽃을 보고 풀밭에 엎드려 운다. 그때 여우가 나타나 `길들인다'는 말을 가르쳐 주었다. 그 말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면서. 길들여지기 전에는 흔해빠진 존재에 불과해서 그립거나 아쉽지 않지만, 일단 길들여진 다음에는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고. 그 장미꽃은 `내가 물을 주고, 내가 벌레를 잡아주고, 내 말을 들어준 꽃'이기에.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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