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놀음만 하는 국정감사
숫자놀음만 하는 국정감사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8.10.16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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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금란 취재3팀(부장)
김금란 취재3팀(부장)

 

불편한 자리는 피하면 상책이다.

눈 한번 질끈 감고 넘기면 몸도 마음도 편하다.

국회의원이나 피감기관들이 국정감사를 대하는 마음이 이럴진대 실속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매년 그랬다.

배지를 단 국회의원들은 일단 호통친다. 그리고 장시간의 질의로 감사를 받는 기관장들의 진을 뺀다. 자신의 질의는 5분을 넘겨도 답변은 단답형이어야 한다 “시정하겠습니다”“인정합니다”등. 눈치 없는 기관장은 국회의원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변한다. 다음 질의 대상인 피감기관들은 안도한다. 이유는 답변 잘하는 기관에 질문이 쏟아지는 것을 알기에. 국감장은 피감기관의 답변을 듣는 자리가 아니라 국회의원의 존재를 알리는 자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정권이 바뀌어도, 야당이 여당되고 여당이 야당으로 처지가 달라져도 국감장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매년 10월 치르는 국감은 국회의원이 해야 할 숙제다.

숙제를 열심히 해도 국민에게 칭찬받기 어려운데 건성으로 해도 직무유기로 국민에게 고발당할 일 없으니 의원들이 긴장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숙제하는 국회의원이나 정책을 제대로 운용했는지 검사를 받는 피감기관들이 국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구한 자료가 많을수록 능력 있는 의원이 아니고 원하는 자료를 모조리 제출했다고 피감기관들이 업무를 잘한 것은 아니다.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제대로 수립하고 드러난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 나가는 의지가 중요하다. 이런 점을 국감에서 찾아내고 지적하고 개선했는지 점검하는 것이 국감의 역할이다.

그런데도 올해 역시 숫자 경쟁만 벌이고 있다.

17일 국회에서 감사를 받는 충북도교육청에 요구한 의원들의 자료는 300건이 넘는다. 건당 요구한 세부 자료까지 합치면 1000여건 이상이다.

이날 국회 교육위원 16명은 충북교육청을 비롯해 대전, 충남 등 7개 교육청을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한다. 요구 자료만 교육청별 300건씩 계산해도 2100건. 운 좋은 교육감은 선서만 하고 입 한 번 못 열고 자리만 지키다 돌아올 가능성도 크다.

국립대학 국감이라고 다를 게 없다. 대학정보공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를 접속하면 알 수 있는 기본적인 교원 현황, 강사 수 등을 국감자료로 요청하고 있을 정도다.

매년 공무원들의 비위, 학교폭력, 성비리, 음주운전 등을 국감 단골 자료로 공개하면서도 근절됐다는 얘기는 없다.

올해 공개한 국감 자료를 보니 최근 5년간 산업부 산하 22개 기관 임직원들의 뇌물향응 수수 적발액이 57억2390만원에 이른다. 직원 234명이 1409회에 걸쳐 뇌물과 향응 등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2014년부터 2018년 6월까지 음주운전이 적발돼 징계를 받은 교사가 전국에서 1883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매년 국감이 시행돼도 나랏돈 떼먹고 범법행위를 저지른 공무원은 줄기는커녕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감이 시작되면 충북도교육청 안팎에서 `삼다수'가 회자한다.

오래전 도교육청 강당에 설치된 국감장에서 국회의원이 책상에 놓인 삼다수 물병을 지적했다. “충북에서 생산되는 물이 없냐?”고. 이날 공무원들은 부랴부랴 삼다수를 치우고 청원군에서 생산된 물병을 가져다 놓았다.

올해 국정감사의 스타는 백종원, 벵골고양이, 선동열이라는 말이 나온다. 숫자놀음만 하는 맹탕 국감의 맥을 올해도 이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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