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내 얼굴
내가 그린 내 얼굴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8.10.1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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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오래된 영화 `관상'을 보았다. `사람의 얼굴에는 세상 삼라만상이 다 들어 있소이다.'라고 관상쟁이가 말한다. 거울을 한참 뚫어져라 본다. 아무리 요리조리 봐도 출중 한데라곤 한군데도 없다. 앞머리를 들어 올리고 더 바짝 거울을 당겨 찬찬히 훑어본다. 복 있는 여자관상은 눈동자의 흑과 백이 분명하고 눈 밑에 애교 살이 도톰하다고 하는데, 난 정반대로 갈색 눈동자에 눈두덩이 움푹 들어간 눈이다.

또한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도톰하고 입 꼬리가 올라가 웃는 상이여야 하고, 하얀 치아가 고르면 복이 있다고 하는데 난 어찌 뭐든 정반대일까. 약간 돌출된 치아, 위 덧니로 치아도 고르지 못한 긴 얼굴형이다. 계란형 얼굴은 관상이론에 의하면 대인관계에 안정감을 주고 통찰력과 기억력이 좋은 반면 이기적인 경향이 있으며 고독을 즐기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졸부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 달빛마저 흐릿하게 내려앉고 알 수 없는 복통이 엄습해와 엎치락뒤치락 선잠을 잤다. 뚜렷한 이목구비도 아니다. 코가 길고 하관이 길쭉하니 아무리 훑어보아도 어여쁘지도 않다 그저 말상이다. 양악[兩顎]부분이 좀 넓을 뿐인데 부자가 될 관상인가? 어쩌다 벼락부자가 되었을까 꼬리를 문 질의는 밤새 줄 달리기를 했다. 변변한 세간도 없고 남들보다 더 가난한 시댁 때문에 더 늦게 집 장만을 했던 지인, 초라한 형색에 동창모임도 참석하지 못했었다.

외모지상주의시대 상체가 큰 말상을 가진 밉상으로 어두운 생활과 째지게 가난한 생활은 굴레였고 족쇄였다. 지인이 유일무이 발걸음 하는 안식처는 종교였다. 운명을 개척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스님 말씀을 듣고 지인은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기 시작했다. 딱히 놀랍거나 특별한 일상이 아니었다. 다만, 부자들의 생활습성을 따라하듯 그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습관을 몸에 익혔을 뿐이란다. 남보다 한 시간 일찍 시작하고, 신문이나 자서전을 읽는 일, 매월 일정한 시간에 지인들과 어울리기, 자원봉사와 운동하기, 평생발전을 위한 자기개발을 하면서 시간을 저축했던 것이다. 가장 평범하면서도 늘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다만 누가 꾸준히 실천하는가에 따를 뿐이었다.

관상 서적을 앞에 두고 괜스레 묘한 설렘이 인다. 반평생 이상을 무탈하게 지내왔음에도 새삼스럽게 뭔 관상인지 무심한 척 얼굴을 곱게 치장한다. 명경 앞에 눈썹도 조금 동그랗게 그려보고, 희미한 입술선도 선명하게 그렸고, 양 볼에 바람을 넣어 넓은 하관을 만들어본다. 내가 그린 내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다 자못 놀랐다. 지난해 얼굴에 있는 점을 뺏으니 혹여나 복점을 잃어 관상이 잘못 나올까 은근 걱정이 앞선다. 아니 성공에 눈도 귀도 멀었으니 관상이 좋을 리가 없을 터.

관상보다 삶의 여정은 가수 노사연의 바램 가사처럼 `우리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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