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국감 더 미룰 수 없다
상시국감 더 미룰 수 없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10.1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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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제헌의회 때부터 실시된 국정감사는 유신 시절 중단됐다가 1988년 재개됐다. 올해로 부활한 지 30년이 됐지만 잘했다는 칭찬을 받은 적은 거의 없다. 수박 겉핥기 국감에서 부실 국감, 호통 국감, 맹탕 국감, 일회성 국감, 벼락치기 국감, 폭로 국감, 이벤트 국감 등 온갖 부정적 평가 속에서 종결되기 일쑤였다. 여론조사에서도 국정감사 성과를 인정하는 응답자는 16%에 불과하다. 과반인 54%는 성과에 부정적이다. 이런 국감을 왜 하느냐는 무용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올해 진행 중인 국정감사도 낙제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들 공산이 높아 보인다. 생산적 감사보다 정쟁에 치중하는 고질병이 올해도 도졌다. 교육위 국감은 시작한 지 3분 만에 정회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의 증인선서를 거부한 야당 의원들이 퇴장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국감도 고성만 주고받다 1시간 만에 중단했다. 한국당 의원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지법원장 재임 당시 사용한 공보관실 운영비와 관련해 직접 답변을 요구하다 퇴장했다. 삼권분립 존중의 의미에서 대법원장은 국감에서 직접 답변을 하지 않는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고 깨질 관행이 아니었다. 금쪽같은 시간을 국감장 밖에서 소득 없이 허비했을 뿐이다. 법사위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정마을 주민 사면 검토'발언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또 야당 의원들이 퇴장하는 파행을 겪었다.

국민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무리수를 동원하는 유치한 발상도 여전했다. 벵골고양이를 들고나와 동물원을 탈출했다가 사살된 퓨마를 애도한 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그렇다. 선동열 국가대표 야구감독에게 엉뚱한 질문과 호통으로 일관한 민주당 손혜원 의원도 마찬가지다. 두 의원의 돌출은 국감의 본질을 흐리고 여론을 곁가지로 흐르게 하는 역기능만 낳았다.

올해 국회의 피감기관은 753개에 달한다. 매년 수십곳 씩 늘어난다. 의원들이 요구한 국감자료 물량도 엄청나 인쇄비만 70억원에 육박한다. 의원들이 20일의 짧은 일정으로 700개가 넘는 기관을 낱낱이 점검하겠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구조적으로 부실국감 귀결은 필연적이다. 의원 전체가 참여해 동시다발로 진행하다 보니 웬만한 이슈 제기로는 언론과 여론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고양이나 손잡이 없는 맷돌 등을 가지고 나와 주목받으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국회의 감시기능이 1년 중 20일에 집중되는 것은 효율성 문제를 넘어 피감기관의 안일과 나태로 이어진다. 몇년 전 국감을 앞둔 충북도내 한 피감기관장이 사석에서 걱정이 크겠다고 묻자 “국감장에서 몇 시간만 등신 노릇을 하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국감 기간만 얼렁뚱땅 넘기면 나머지 기간은 국회 신경을 쓸 일이 없다는 얘기였다.

이런 이유로 국감을 20일로 묶어둘 것이 아니라 국회가 필요하면 언제나 열 수 있는 상설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 상·하원은 주요 이슈나 분쟁이 생길 때마다 청문회를 열어 국민들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 얼마 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대한 청문회는 상원 정보위원회와 하원 에너지·상업위원회에서 동시에 열리기도 했다. 두 기업의 임원들은 청문회장 두 곳을 오가며 선거기간에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정치 활동을 한 해커들에 소극적 대응을 했다는 추궁을 받아야 했다.

국회는 그동안 국감 남발과 의정업무 과중, 지역구 관리의 어려움 등을 들어 상시 국감에 난색을 표했지만, 이제는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특히 여당은 야당이던 민주통합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상시국감 도입을 제안했었다. 이제 집권당이 돼서 입장이 달라졌다면 더는 개혁정당을 입에 올려선 안 된다. 지난 2014년에는 여야가 상시국감의 전단계로 6월과 9월로 국감을 나눠 진행키로 합의했다가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국회가 국민이 외면하는 현행 국감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다름아니다. 정부를 365일 감시하라는 유권자의 명령을 업무 부담을 이유로 거부한다면 국회 간판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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