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결미
아름다운 결미
  • 최명임 수필가
  • 승인 2018.10.11 17: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최명임 수필가
최명임 수필가

 

한 해 가을, 천태산 산행 갔을 때 영국사 문전에 은행나무가 환상적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이파리들이 완벽한 황금색이었다. 천 년을 묵는 동안 고승의 독경 소리를 문전걸식하였으니, 드디어 해탈한 듯 황금 불상처럼 좌정하고 있었다.

7년 만에 찾았더니 고승처럼 텅 빈 가슴에 사리를 달고 삭풍을 맞고 있다. 생불의 사리인가? 둥그런 영물이 삭풍을 삭히는 저 우람한 소리, 내게도 고요가 찾아든다.

바람에야 끄떡없을 터이지만, 혹 명줄이라도 놓으실까 안타깝다. 노구를 지탱하기 어려워서 지주에 몸을 의지하고 장구한 세월에 얻은 상처는 시멘트로 싸매놓았다. 목불木佛 앞에서 나도 모르게 합장을 했다.

속세 한 길가에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미처 나이테도 형성되지 않은 천방지축이다. 태풍이 흔들어도 뿌리는 내려야 하니 그 처지가 안쓰럽다만 행여 방랑자처럼 자유만 고집해서는 낙오자로 남으리라. 영국사에 다녀온 뒤 저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자주 올려다본다. 영국사 비목처럼 해탈의 경지에 이르려면 어림잡아 천 년 하고도 두 천 년은 더 살아야겠거니 중얼거린다.

가을이 깊어 가는 데 원숙한 색채와 미완의 색으로 나누어졌다. 기상이변으로 두서없이 잎을 피운다지만, 때맞춰 결실은 보아야 하거늘 뒤늦게 퍼런 은행잎이 햇살을 붙들고 바쁘다. 가을은 사사로이 기다려줄 여유도 없는데 무슨 일로 미적대다 채색도 못 했는지…. 변명의 여지를 주면 줄줄이 물고 늘어지겠지만, 저의 무능함을 확인하는 꼴이 될 게다.

서리가 내리더니 그예 아름다운 결미를 놓쳐버렸다. 땅에 주저앉아 황망한 표정이다. 어쩌자고 은혜로운 시간을 다 허비하고 회한에 떨고 있는지…. 저 안타까운 군상들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 내몰린 의미 없는 떨거지가 되었다. 그래도 저는 다시 살아 볼 기회가 있으련만.

그도 저도 모두 떨어진 날, 인생도 저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쓸쓸했다.

은행나무만 그랬을까. 일찍 영글어 땅에 떨어진 봉선화 씨앗이 가을에 싹을 틔워 제법 컸다. 한 녀석의 어처구니없는 도발이 아닌 열댓 포기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기세로 보아 아름다운 결미를 장담하고 있다. 내심 어리석은 것들의 앞날이 보여 나도 모르게 쯧쯧 혀를 찼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데, 아니나 다를까 안일함에 젖은 오만 위로 된서리가 내렸다.

가을을 놓친 은행나무와, 어리석은 봉선화의 회한은 회색 빛깔이다. 목표를 잃어버린 사람과, 목적도 없이 달려와 거울 앞에 선 사람 허무의 색깔이다. 쉽게 얻고자 하였으니 실패하였고 쉽게 얻었어도 끝에는 허무만 남으리라.

영국사 은행나무의 황금 비색은 아름다운 결미이다. 긴 시간 갈고 닦아 빛을 발하는 대기만성한 사람이다. 완성을 이룬 수행자의 상단전에 머무는 색채이다. 깊은 사색과 밤을 지새운 고뇌로 채찍질하였으니 능히 저를 증언하고도 남았다.

한결같이 부처님 문전에 살았으되 그 문전에서도 천 년에 얻은 경지라면 저 어린 것의 지금을 탓하는 내 근시안적 망발은 도로 주워담아야 옳겠다. 천태산도 독경 소리도 없는 아수라장에 살지만, 천 년하고도 두 천 년쯤 더 미완의 계절을 나면 분명 어린나무도 해탈의 경지에 이를 테니 말이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더욱 그러하겠거니, 우리는 저마다 어떤 색깔로 지금을 나고 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