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나비효과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10.1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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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돌아보면 수많은 우연들이 내 인생을 만들어 왔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입학 원서를 쓸 때의 일이다. 나는 천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사범대학에 그런 분야를 공부하는 학과는 지구과학교육과였다. 그래서 지구과학과에 지원을 하려고 했더니 담임 선생님이 지구과학과는 졸업해도 취직이 어렵다며, 물리교육과를 가라고 했다. 물리과에서도 천문학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대로 물리교육과에 지원을 했고, 그래서 나는 물리 선생이 되었다.

선생님도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을 했을 것이고,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벼운 결정이 내 인생을 바꾸어 버렸다. 지구과학 선생을 했을 나를 물리 선생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담임 선생님께 입학원서를 들고 찾아 갔던 그 짧은 순간, 그 가벼운 결정이 내 인생을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이 있다. 남해안의 어느 산골에 나비 한 마리가 날개 짓을 한다. 이 날개짓에 주위의 공기가 약간 흔들릴 것이다. 이 공기의 약한 흔들림은 다른 공기분자를 흔들고, 이 흔들림은 점차 전파되어 남해안 대기 흐름에 작은 변화를 일으킬 것이며, 남해안 대기의 작은 변화는 태평양 대기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 영향은 점차 적도 지방의 대기 흐름에 영향을 주어서 생기지도 않았을 태풍이 생기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태풍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과학계에서는 나비효과라고 부른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의 말씀이 바로 나비효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나비효과가 생기는 것은 모든 자연현상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이 비선형적이기 때문이다. 비선형적이라는 말이 매우 어렵게 들릴지 모르지만, 원인의 크기와 결과의 크기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원인이 두 배가 되면 결과도 두 배가 되는 것을 선형적이라 하고, 원인이 두 배가 되었을 때 결과가 둘의 제곱 배가 된다거나 하면 비선형적이라고 한다. 우리는, 작은 원인은 작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물론 자연현상에서도 작은 원인이 엄청나게 큰 결과를 가져오는 비선형 현상은 허다하다.

나비효과는 생명의 진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연히 (번개가 쳤거나 화산이 터졌거나) 원자들이 결합하여 아미노산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단백질을 만들고, 그리고 지극히 우연히 DNA를 만들고, 그런 작은 우연이 연속되면서 생명체가 탄생했다. 그리고 작은 우연은 계속해서 일어나서 아메바가 되고, 원숭이가 되고, 인간이 되었다.

만약 지구가 다시 태어나도 이와 같은 과정은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결코 지금과 같은 동물과 식물은 물론, 우리와 같은 인간이 지구에 생겨나는 일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우연이 몇 번은 일어날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일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사위를 던지면 우연히 1번이 나올 수 있다. 잘 하면 연속해서 1번이 두 번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 번 연속 나오기는 매우 어렵고, 100번 연속해서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구의 첫 생명체가 그런 모습으로 생긴 것은 매우 작은 우연이다. 하지만 그 작은 우연이 우주적으로 독특한 지구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내가 내딛는 작은 한 걸음, 이 작은 한 걸음이 훗날 내 인생을 바꿀 것이다. 내 인생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바꾸고, 세계를 바꾸고, 결국에는 이 우주를 바꾸게 될 것이다.

김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서산대사의 시(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 원작자는 조선후기 시인 이양연이라고 함.)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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