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그리는 르네마그리트
철학을 그리는 르네마그리트
  • 이상애 미술학 박사
  • 승인 2018.10.1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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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미술학 박사

 

우리는 너무나 친숙한 일상적인 사물들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사물들은 그저 있어야 할 곳에 늘 그렇게 그들다운 모습으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원래 있던 자리에서 따로 내어 낯선 곳에 위치시킨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누군가 늘 쓰는 책상을 바닥에 놓지 않고 천정에 붙여놓아 멋진 샹들리에와 함께 나란히 위치해 있다고 치자.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저으며 `왜?', `어째서?', `어떻게?', `뭐야?'라고 말하며 당혹해할 것이다. 자 여기서 우리의 무의식중에 죽어 있던 그 사물들은 그때야 비로소 찬란하게 되살아나고 오묘하고 신비한 존재감을 부여받게 된다.

미술사 속에서 이처럼 모순되거나 대립적인 오브제들을 전혀 엉뚱한 환경에 놓음으로써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킨 화가가 있다. 바로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이다. 그는 사물의 본질들을 역설적으로 결합한 `낯설게 하기', 즉 `데페이즈망(Depaysment)'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철학을 그리는 화가이다. 그의 작품 <개인적 가치>를 읽어보자.

이 작품에서 우리는 일견 기존의 재현체계, 의사소통의 체계를 거부하고 논리적인 자연의 비례법칙을 무시한 화면구성을 볼 수 있다. 거대화된 빗과 컵, 비누, 성냥개비, 화장용솔 등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어버린 듯한 침대나 장롱과 대비를 이루며 기이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대립적인 물건들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서 이대로라면 사용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는 그 기능을 잃은 것들이다. 또한 안과 밖, 혹은 화장대와 침실이 한 화면에 응축되어 있어, 회화 속에 재현된 현실과 실제 현실 간의 모호한 경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명백하게 실재하는 현실이란 것 자체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의 그림언어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끊임없이 수수께끼와 의문을 던져준다.

마그리트는 시공간의 마술적 변조나 문법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역설, 즉 일상의 사물들을 생소한 콘텍스트 안에 던져놓음으로써 관계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다. 그는 내면의 정신세계와 사고의 관계, 현실의 이면에 숨겨진 세계, 고정된 우리의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유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존재와 리얼리티의 철학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키고, 우리가 진리라고 믿었던 세계는 실은 일상적으로 파악되는 인습적, 가면적인 체계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이 융합되는 분화하기 이전의 자유로운 사고의 순간을 즐겨 표현해왔던 그에게는 데페이즈망이라는 기법이 매우 적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시적인 것이 실재인가? 비가시적인 것이 실재인가? 인식의 주체인 우리는 무엇을 자각하든 그것은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단지 인식작용을 통해 재구성된 이미지를 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마그리트의 회화의 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그림 밖의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간섭하는 `파레르곤(Parergon)'인 것이다.



/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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