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청와대 개입 정황"
과거사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청와대 개입 정황"
  • 뉴시스 기자
  • 승인 2018.10.1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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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지검장 "검찰총장 등 지연 의도 드러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폭로로 세상에 알려져

"검찰이 치안본부에 사건 축소·조작 기회 제공"

"잘못된 수사 사례로 교육 및 대책 수립" 권고



전두환 정권 시절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대검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이 같은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사 결과를 보고받았다고 11일 밝혔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지난 1987년 1월14일 오전께 치안본부 대공수사2단 소속 경찰 5명이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대학생 박종철을 물고문하는 방식으로 질식사하게 한 사건을 말한다.



대검 진상조사단은 이 사건 발생 다음 날 국가안전기획부장, 법무부장관, 내무부장관, 치안본부장, 검찰총장 등이 참석한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열렸고, 이후 검찰의 직접 수사가 중단된 뒤 치안본부가 수사를 담당하게 된 것으로 파악했다.



조사단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그해 5월18일 은폐 의혹을 폭로하기 전까지 검찰이 공범이 추가로 더 있는지 여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고 봤다. 이러한 장기간의 수사 착수 지연은 관계기관대책회의를 통해 전달된 청와대, 대통령 영향 및 지시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조사단 결론이다.



정구영 당시 서울지검장은 지난 8월8일 조사단 면담에서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장관이 본래 나한테 부탁하듯이 말할 이유가 없으니까 대강 이게 청와대 뜻이라고 생각했다"며 "검찰총장은 자꾸 '일주일만 있다가 하자'고 했고, 일주일이 있으면 또 일주일 하고 그렇게 새월이 흘러갔다. 그러던 중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발표해주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폭력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5명 가운데 구속된 피의자는 2명 뿐이다. 구속된 고문경찰관 2명이 심경 변화를 일으켜 추가 공범을 밝히려 하자, 치안본부 대공5차장 등 간부들이 그해 4월2일 특별관리하던 자금 2억원으로 회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고문경찰관 가족들은 치안본부장 및 간부들로부터 위로금, 생활비, 이사비용 등을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단 최종보고를 받은 과거사위원회는 "사건 발생 초기 검찰이 치안본부의 조작·은폐 시도를 막고 부검을 지휘해 사인이 물고문으로 인한 질식사임을 밝혀낸 점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면서도 "검찰은 정권 안정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조작할 기회를 줬고, 치안본부 간부들의 범인도피 행위를 의도적으로 방조했다"고 심의했다.



이에 따라 과거사위원회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포함한 검찰의 잘못된 수사 사례와 모범적 수사 사례를 대비해 현직 검사와 수사관 또는 신규 임용자 등에 대한 교육 과정에 반영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립하고 검사 개개인에게 직업적 소명의식을 확고히 정립할 수 있는 제도 및 대책을 수립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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