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들길을 걸으며
시월, 들길을 걸으며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10.0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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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할 말이 있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는 화자(話者)는 서글프다. 자신에게 해 줄 말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청자(聽者)는 더 서글프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한 말로 뒤늦게 10월을 시작한다.

추석연휴와 개천절이 겹치면서 두 번의 <수요단상>을 건너뛰었다. 그 사이 9월이 가고 10월이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는데,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보다 글을 쓰지 못한다는 서늘함이 더 크다.

요즈음 나는 무심천과 미호천이 만나는 합수머리이거나, 까치내를 거쳐 멀리 옥산면 가락리까지의 들길을 자주 걷는다. 바람은 적당히 신선하고 손톱으로 툭- 튕기면 쨍-하고 금이 갈 것 같은 쪽빛 하늘은 눈부시다. 거기에 순간순간 모습을 바꾸는 흰 구름과 아침저녁 붉게 물드는 노을은 내가 살고 있는 청주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어디 하늘빛만 그런가. 천변의 들길을 따라 보랏빛으로 피어나 일렁이는 억새꽃도, 무리지어 수줍음을 달래는 벌개미취의 군락과 성급한 산국이며 구절초에 이르기까지 온갖 가을꽃들의 자태는 곧잘 숨을 멈추게 한다.

큰길을 따르는 다리 밑으로, 그리고 쓸쓸한 충북선 기찻길을 따라 외롭게 흐르는 화물역차와 달랑 4칸을 매달고 동쪽으로 서쪽으로 오가는 객차의 느린 움직임도, 이 길을 걸으며 만날 수 있는 가을의 깊은 감동이다. 그리고 소나무 다섯 그루가 지키고 있는 정북토성과 그 푸르른 소나무의 배경이 되는 상당산과 우암산의 먼 풍경 또한 가을에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사람이 적어 고즈넉한 그 길을 걸으며 나는 역사를 생각한다. 아주 작은 토성에서 역시 아주 작은 해자를 만들어 기필코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 옛사람들에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남에서 북으로 치켜 흐르는 무심천이 동서로 물길을 만든 미호천과 만나는 지점에 펼쳐진 넓은 들에서 옛사람과 지금 사람들은 허물없이 어떤 풍요를 꿈꾸며 살아왔거나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그 땅위 하늘엔 바다를 건너는 무수한 비행기가 날고, 자동차는 시간과 공간을 꿰뚫고 말겠다는 기세로 분주한데, 한가로이 들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엄습하는 쓸쓸함은 역사에 어떤 점을 찍고 있는 것인지.

`또 한 명의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았고, 누구나 알고 있었던 「다스」의 소유권이 그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법원이 획인해 준 선고 결과가 나왔다.' 이미 다 낡은 천변 자전거길을 걸으며 또 다시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자연은 이처럼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며 우리를 경계하고, 땀 흘려 일 한 만큼 드넓은 평야는 어김없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세상을 위안하는데, 인간사 어쩌다 그릇된 탐욕으로 이토록 역사를 어지럽히는지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방과 정부수립 이후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 땅에서 만난 전직 대통령 가운데 불행하지 않은 사례가 몇이나 되는가. 쫓기듯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굴욕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으며, 교도소 신세를 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듯, 비극적이고 불행한 역사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게 다 대통령이 된 자가 자연인으로서 버리지 못한 무능력과 탐욕 때문이라고 책임을 온통 떠넘길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방법을 달리한 적도 있지만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선출된 것임은 분명하다. 거짓과 선전 선동에 놀아나거나, 소중한 주권보다는 개인의 경제적 탐욕에 대한 대리만족의 수단으로 여겼다 해도, 결국 그런 대통령을 뽑은 국민에게도 상당한 책임과 더불어, 역사 앞에 진솔한 반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대통령을 뽑는 역사적 불행을 만들지 말고, 그런 대통령을 옹립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도 단단하게 경고하는 국민의 힘을 이 가을에 다짐해야 한다.

풍요로운 시월 들길을 걸으며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진리가 새삼 떠오른다. 자연은 결코 우리를 그저 위협하지 않는다. 가을이 올 수는 있을까 의심했던 극심한 폭염을 뚫고 찬란한 계절은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고, 그런 시월에 우리는 넉넉하고 느리게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브레히트의 말처럼 사람끼리 서로 말을 들어주고,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인간 세상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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