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가을비
  • 임도순 수필가
  • 승인 2018.10.0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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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임도순 수필가
임도순 수필가

 

새벽에 길을 걷는다. 하천변을 따라 이어진 길을 따라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우산으로 피하며 투덜거린다. 불만을 속으로 새기며 물이 부족할 때 뿌려주지 않는 데 대한 아쉬움이 자연스럽게 겉으로 드러난다. 필요할 때와 필요하지 않을 때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여 결정을 내리고 있다.

물이 필요한데 비는 오지 않고 뜨거운 태양만 이글거릴 때는 기다리고 기다렸다. 한여름의 녹음이 산야와 들녘에서 보여야 하는데 목마름이 계속되어 간신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도 벅차 보였다. 나무는 잎을 줄여 연명하고 풀의 잎은 생기가 없이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있다. 언제고 하늘에서 비가 와야 해결되는 문제라 기다림만이 최고의 방법이었다. 더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될 때쯤 비가 내려 감사하는 마음이었으나 이제는 많은 양이 계속 내리는 데 대한 불만이다.

비가 내리는 원리는 간단하다. 수증기가 모여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는 현상이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내기는 매우 어렵다, 과학 발달로 비가 내리게는 할 수 있겠지만, 경제적인 부담이 크고, 물이 필요한 시기에 충분한 양을 공급하기가 어렵다, 자연이 줄 때는 별것 아닌데 막상 가뭄이 계속되면 그 위대함이 발휘된다. 생활을 하면서 알맞은 때에 알맞은 양의 비가 내리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요구하지 않을 때 내려주는 비를 불만의 대상으로 삼으니 나의 욕심이 과하다.

어르신의 삶에도 가을비가 내린다. 자식을 낳아 키우고 가르쳐서 성인으로 성장시켜 놓으니 이제는 스스로 자란 듯이 가치 기준이 달라진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안 먹고 안 쓰는 절약정신이 몸에 배게 오로지 일만 하면서 살아왔다, 삶에서의 변화가 급속도로 나타나고 수명이 예상외로 길어지면서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타난다. 건강하지 못한 삶으로 바뀌면 당연히 자식들이 부모를 돌보아야 하는데 이제는 먼 나라 이야기, 꿈같은 일이 되어간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큰 고비를 넘기니 핵가족으로의 진입이 너무 빨라 적응이 어렵다.

나는 언제까지 필요로 할까. 어릴 때는 부모님의 보물 덩어리고 학교생활을 하면서 기대에는 못 미치어도 자식으로 충실하게 살았다. 청년기부터 장년기까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가 어버이의 자리에서 필요한 존재로 자리 매김하였다. 이제 퇴직을 하였지만 아직은 직장에서 근무하며 사회 활동을 하고 내 영역에서 맡은 역할을 한다. 언제까지 사회에서, 가정에서 필요한 존재로 자리를 지킬 줄 모르지만,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다. 몸이 건강하고 활동을 할 때는 모르지만 언제 어떤 영향으로 존재의 가치가 변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가을비는 우산으로 피하지만 내 인생에 내리면 어찌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건강이 받쳐주지 않아 필요한 존재에서 가치가 없어지면 어떤 삶이 기다리나. 괜한 걱정으로 넘기고 싶지만, 현실에서 어르신의 삶을 보며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아침에 길을 걸으며 내리는 비에 불만을 표현해서 미안하다. 언제 내려도 자연이 주는 선물이고 귀한 존재인데 내가 필요하지 않을 때 내린다고 투덜대는 내가 밉다. 넘치면 넘치는 대로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만족하며 대비하면 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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